[씨줄날줄] ‘펜스 룰’/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펜스 룰’/임창용 논설위원

임창용 기자
임창용 기자
입력 2018-03-07 22:50
수정 2018-03-08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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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인 학대를 그만두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동등한 접근권이 보장돼야 한다.” 얼마 전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한 말이다. 페이스북 2인자에 오를 만큼 성공한 여성으로서 다수의 여성들이 미투 운동의 역작용으로 사회 참여적인 측면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남성들이 미투 운동 때문에 여성 동료와의 만남 자체를 피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미투 운동은 이제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성공을 일구고 존경받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권력에 의한 성적 학대는 반드시 뿌리뽑아야 할 적폐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남녀평등이다. 미투 운동을 핑계로 남성들이 여성을 멀리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남녀평등의 가치가 영향받는다면 미투 운동의 취지가 희석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남성들이 중요한 자리를 주로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여성들이 조직 운영에서 소외되고,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샌드버그의 지적은 충분히 일리 있어 보인다.

요즘 인터넷을 중심으로 이른바 ‘펜스 룰’(Pence Rule)이란 말이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성적인 구설수에 오르지 않으려면 가급적 여성과의 만남은 피하는 게 상책이란 의미다. 펜스 룰을 따른다면서 ‘사장이 여직원과의 해외 출장을 꺼려해 남자 직원으로 교체했다’거나 ‘부장이 회식에서 여직원은 빠져도 된다고 했다’는 등 여성 동료와의 접촉 자체를 피하는 사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기도 한다. 여자친구와 키스할 때 보증인을 세워 두는 등의 어이없는 상황을 담은 펜스 룰 만화 시리즈까지 나돈다.

펜스 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2002년 의원 시절 의회 전문지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아닌 어떤 여성과도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해 15년 전의 인터뷰를 재조명한 기사를 내보내면서 미투 운동과 맞물려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기사는 펜스 부통령 부부의 각별한 금실을 다룬 것이었다. 건강한 결혼생활을 위한 그만의 기준인데 이를 다른 남성들이 ‘성추행 예방 규칙’인 양 오해한 측면이 크다. 성추행이나 성차별이나 여성에게 괴롭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여성과 물리적 거리만 둔다고 성추행이 사라질까. 아무리 지위가 낮은 여성이라도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마음부터 갖는 게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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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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