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중국의 ‘자오쯔양 딜레마’/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중국의 ‘자오쯔양 딜레마’/오일만 논설위원

입력 2015-01-18 23:56
수정 2015-01-19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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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19일 새벽. 비가 뿌리는 톈안먼 광장에서 메가폰을 든 채 시위 학생들에게 해산을 호소하는 일흔 나이의 노신사가 있었다.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학생 제군들은 아직 젊다. 살아서 중국의 4대 근대화를 실현하는 날을 직접 보아야 한다…”는 간곡한 설득 장면은 아직도 중국인들의 가슴 속에 각인돼 있다.

중국 현대사의 풍운아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당총서기는 이날을 끝으로 영원히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톈안먼 사태 당시 무력진압을 지시한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과 리펑(李鵬) 총리에 맞서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다 실각된 것이다. 덩의 오른팔로 개혁 개방의 야전사령관이었던 그는 ‘당을 분열시켰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고 16년간 가택연금 끝에 2005년 1월 17일 사망했다. 중학교 중퇴 학력으로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들에게 모진 고초를 당했지만 그는 기적처럼 회생해 중국 최고 권부에 오른 인물이다. 개혁 개방 초기 당시로선 파격적인 자유시장 정책인 ‘가정생산청부제도’(家庭生産請負制度)를 성공시켜 “식량이 필요하면 자오쯔양을 찾아라”라는 말을 유행시킨 당사자다.

이렇게 현대 중국사의 비극과 권력투쟁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 온, 그의 유골함은 죽은 지 만 10년이 됐지만 베이징 자택 마당에 안치돼 있다. 당국의 거부로 공산당 최고위 간부들이 묻히는 바바오(八寶)산 혁명열사릉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서는 ‘반혁명 폭란(暴亂)’을 일으킨 톈안먼 사태의 주동자들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서거 10주기를 맞아 최근 중국 사회에서 ‘영원한 자오쯔양’(永遠的趙紫陽)이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 계정이 만들어지고 홍콩에서도 추모 서명 운동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의 복권은 현재로선 요원하다. 이는 그의 사후 회고록(국가의 죄수-The Prisoner of the State)에서 밝힌 ‘위험한 생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중국이 현대적 시장경제와 현대문명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의회민주주의를 실시해야 한다”며 서구식 다당제 민주주의를 주창했다. 공산당의 유일 지배를 통해 중화부흥을 노리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지도노선과 정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자오의 유골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은 중국의 딜레마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톈안먼 사태를 진압한 후 초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성공의 역사 때문에 덩의 통치노선이 옳았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이 아직도 절대 다수다. 반면 중국의 고도성장의 뒤안길에 나타난 부정부패 등 각종 사회적 폐해 때문에 자오의 길을 따라 민주화 운동 대열에 서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류샤오보(劉曉波) 등이 대표적이다. 자오의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9년 중국 사회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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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2015-01-1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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