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더라도 속살 같은 골목을 들여다보지 못했으면 반쪽짜리라고 생각한다. 내밀한 사연들이 골목 안쪽에는 있으려니와 손질되지 않은 일상의 풍치를 대면하는 즐거움이 각별하다.
제주의 창창한 바다보다 둘레길 외진 동네의 저녁 골목이 내게는 아끼는 장면이다. 석양 아래 돌담 골목을 둥글게 따라 걷다 만났던 밀감나무 집. 까만 돌담 너머로 잘 익은 밀감이 가지마다 점점이 백열구처럼 불을 켜던 골목. 늦은 저녁상을 차리는지 낮은 부엌에서는 달강달강 쉬지도 않고 그릇이 부딪던 소리. 하마터면 나는 물 한 그릇 달라고 대문을 밀고 들어갈 뻔했다.
출퇴근길에 아껴 보던 옛 동네의 골목길이 뭉텅뭉텅 잘려 나간다. 고층 아파트가 밀어오니 속수무책이다. 어깨가 비뚜름해도 제 할 일 다했던 전봇대, 해가 지면 눈이 침침해지던 외등. 저녁 찬거리였겠지, 골목 텃밭에서 풋배추 한 움큼 솎던 손길, 알감자의 흙을 탈탈 털어 뒷짐 지고 걷던 발길. 갈 데는 있을까, 짐자전거가 기대어 쉬던 늙은 참나무는.
날마다 모퉁이가 깨지는 골목길이 섭섭하고 섭섭해서 발길이 붙잡히는 저녁.
골목의 하늘에 오늘은 귀퉁이 깨진 눈썹달도 말고 둥글고 둥근 달이 밤새도록 떠 있기를.
sjh@seoul.co.kr
제주의 창창한 바다보다 둘레길 외진 동네의 저녁 골목이 내게는 아끼는 장면이다. 석양 아래 돌담 골목을 둥글게 따라 걷다 만났던 밀감나무 집. 까만 돌담 너머로 잘 익은 밀감이 가지마다 점점이 백열구처럼 불을 켜던 골목. 늦은 저녁상을 차리는지 낮은 부엌에서는 달강달강 쉬지도 않고 그릇이 부딪던 소리. 하마터면 나는 물 한 그릇 달라고 대문을 밀고 들어갈 뻔했다.
출퇴근길에 아껴 보던 옛 동네의 골목길이 뭉텅뭉텅 잘려 나간다. 고층 아파트가 밀어오니 속수무책이다. 어깨가 비뚜름해도 제 할 일 다했던 전봇대, 해가 지면 눈이 침침해지던 외등. 저녁 찬거리였겠지, 골목 텃밭에서 풋배추 한 움큼 솎던 손길, 알감자의 흙을 탈탈 털어 뒷짐 지고 걷던 발길. 갈 데는 있을까, 짐자전거가 기대어 쉬던 늙은 참나무는.
날마다 모퉁이가 깨지는 골목길이 섭섭하고 섭섭해서 발길이 붙잡히는 저녁.
골목의 하늘에 오늘은 귀퉁이 깨진 눈썹달도 말고 둥글고 둥근 달이 밤새도록 떠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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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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