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념에 물든 막말교사들 더 이상 방치 안된다

[사설] 이념에 물든 막말교사들 더 이상 방치 안된다

입력 2011-11-08 00:00
수정 2011-11-0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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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당적 이념과 천박한 막말이 버무려진 수업 내용을 녹음한 파일이 인터넷에 잇따라 올라오면서 중·고교 교육현장의 일그러진 실상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엊그제는 “각하는 수구꼴통의 전형”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면서 반기업·반정부 정서를 부추긴 서울의 한 사립고 윤리교사의 강의내용이 인터넷에 올랐다. 교육당국은 학생들을 상대로 한 이 같은 교육 행태가 돌림병처럼 번지기 전에 적극 대응에 나서야 한다.

얼마 전 김포의 한 공립고교 역사교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 등을 무차별 공격하는 수업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윤리교사의 강의 내용을 보면 더욱 기가 찬다. 야권이나 전교조를 지지하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무조건 선(善)이고 여권 인사는 모두 악(惡)이라는 이분법적 정치관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영감탱이’, ‘대법관 XX’ 등 육두문자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무식해서 아군 적군 구별 못하고 엉뚱한 데 표를 준다.”며 여당을 지지하는 서민을 ‘돌대가리’라고 비하하기까지 했다. 아직 비판적 수용능력이 여물지 않은 고교생을 상대로 한, 균형감각을 상실한 의식화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냉·온수가 적절히 배합된 물로 씻어야 할 여린 피부에 한쪽 밸브를 잠가놓고 냉수와 온수 중 한 가지만 쏟아붓는 꼴이 아닌가. 오죽하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녹음 파일을 인터넷에 올려 사회에 고발하는 방법을 택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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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 이인식 의원(금천구 제1선거구·더불어민주당)이 ‘2026 위대한 한국인 100인 대상’에서 ‘교통복지 지역발전 의정 공로대상’을 수상했다. 이 의원은 지난 22일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위대한 한국인 100인 대상’은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스포츠 등 각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펼치며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는 행사로, 이 의원은 교통복지와 지역발전 분야의 의정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번 수상은 서울시의회 교통위원으로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금천구의회 의장 시절부터 주민 삶과 밀접한 현안을 해결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뚝심 있게 발로 뛰어온 오랜 의정 경험이 깊은 밑거름이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실제로 이 의원은 금천구의회에서 다져온 현장 중심의 감각을 바탕으로, 현재 서울시의회 교통위원회에서 교통복지 확대, 시민 이동권 보장, 지역 교통환경 개선 등 시민 생활과 직결된 핵심 정책들을 꼼꼼히 챙겨나가고 있다. 이 의원은 “이번 수상은 지역 주민들과 늘 현장에서 호흡하며 답을 찾고자 했던 그간의 노력에 대한 따뜻한 격려라 생각한다”며, “금천에서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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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정 이념의 포로가 된 교사들이 교단의 절대다수를 점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또한 이들의 빗나간 가치관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가치관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한 헌법정신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정히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고 실천하고 싶다면 교단을 떠나 자신의 이념에 맞는 정당에 가입해서 그 뜻을 펼치는 것이 옳다. 미래세대를 키우는 교단이 설익은 가치관을 일방주입하는 의식화의 제단으로 전락하는 일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교육당국은 더 늦기 전에 적절한 제어책을 강구하기 바란다.

2011-11-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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