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레고랜드보다 ‘구석기 허허벌판’을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레고랜드보다 ‘구석기 허허벌판’을

입력 2019-08-06 22:20
수정 2019-08-07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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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지난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 9곳이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사를 통과했다. 이로써 한국은 석굴암과 불국사를 필두로 조선 왕릉 등 14개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이탈리아, 중국 등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수의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문화국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72년 채택된 세계문화유산 협약에서는 문화유산이 개별 국가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소중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기 때문에,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의 확인·보호·제시 그리고 미래세대로의 전승을 목적으로 세계문화유산을 심사 등재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번에 등재된 소수서원 등 9곳의 서원은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인정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축하하고 기뻐할 일이다.

하지만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에서도 엘리트주의적 건축물들이 과도하게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고 우려한 점을 상기해 볼 때 여전히 구석기 유적을 비롯한 선사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불리한 여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선사시대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선사유적은 역사유적보다 그 수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인류진화 연구에 중요한 고인류 화석 정도는 나와야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에 명함을 내밀 수 있을 정도이고, 적어도 고인돌같이 뭔가 눈에 확 띄는 실체가 있어야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겠다.

구석기 유적의 경우에는 오죽하면 ‘구석기 허허벌판’이라고 간판을 달아 놓은 곳이 있을 정도로 방문했을 때 눈에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충분한 지식이 없을 경우에는 감동이 없다. 그저 하찮아 보이는 돌멩이 몇 조각을 중요한 유물이라고 우기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허허벌판으로 남겨져 있는 구석기 유적들도 소위 럭셔리한 세계문화유산들에 못지않은 중요한 인류의 자산이다. 그곳에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가 소중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닐 실버만 교수는 문화유산이란 방문객들에겐 일상에서 벗어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장소이고 지역민들에겐 경제가 낙후된 지역의 서비스 산업의 일부분인 일터라고 재해석했다. 일정한 토지를 점유하고 있는 공공재로서의 선사유적의 경우에는 위의 두 가지가 다소 상반되는 목표를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는 즉 개발과 보존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상대적인 경쟁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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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유적에 레고랜드(강원도)를 짓겠다고 마구 삽질을 해대는 사회보다는, 구석기 허허벌판에 서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이야기들에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시민들이 다수인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문화국가의 기본 자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19-08-07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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