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지방정부, ‘통화’ 발행해 지역 경제 살린다/김승훈 사회2부 차장

[데스크 시각] 지방정부, ‘통화’ 발행해 지역 경제 살린다/김승훈 사회2부 차장

김승훈 기자
입력 2019-12-19 17:22
수정 2019-12-20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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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훈 사회2부 차장
김승훈 사회2부 차장
서울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해 오던 A씨는 최근 문을 닫았다. 점심시간이면 손님들로 시끌벅적했던 ‘맛집 명성’은 옛말이 된 지 오래다. 2년 전부터 손님이 줄더니 올 들어선 적막만이 맴돌았다. 인근 중소상인들의 줄도산이 치명타였다. 오랜 세월 정든 가게를 정리해야 했을 땐 밤새 울었다.

자영업자들의 곡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있다. 살기 힘들다는 비명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지역 경제를 살려 달라는 호소가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이런 위기 국면 타개를 전적으로 중앙정부에만 맡겨도 될까. 서민들의 목숨 줄이 달린 경제 위기 상황을 접하며 든 생각이다.

지방자치단체 사무 범위를 규정한 지방자치법 제9조엔 산업 진흥·지역 개발 등에 대한 내용이 나열돼 있다. 지방정부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책임을 갖고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자치단체에 대한 지역민들의 가장 큰 요구도 지역 경제 활성화다. 자치단체장과 지역 경제 활성화는 떼려야 뗄 수 없다.

문제는 자치단체장에게 경제를 살릴 정책 수단이 없다는 것. 자치단체장의 대표적인 지역 경제 활성화 대책은 도로·교통 인프라 확충을 통한 사람 유입, 관광개발을 통한 관광객 유치, 산업단지 개발을 통한 기업 유치, 공공일자리 창출이다. 이마저도 지방정부가 주도하지 못한다. 세금이 대부분 국세로 편성된 탓이다. 중앙정부에서 보조금이나 교부세를 받아야 그나마 지역민들에게 면피용 생색을 낼 수 있다. ‘앵벌이’로 얻은 돈으로 추진하는 지역 경제 살리기가 모범 사례로 굳어져 있다. 책임만 있고 수단이 없다. 자치단체장의 역할과 비중은 과소평가될 수밖에 없고, 성난 민심의 화풀이 대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 경제는 거시적인 통화·금융·산업·외환 등 국가 차원의 정책을 통해서만 활성화할 수 있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으니,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르겠다.

이 판도를 확 바꾸는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고유권한으로 인식돼 온 ‘통화·금융’ 수단을 들고 지역 경제 살리기 전면에 나선 것이다. 올해 기준 전국 광역·기초자치단체 177곳에서 2조 9300억원에 달하는 지역화폐를 발행했다. 인천 지역화폐인 ‘인천e음’은 지역민들에게 선풍적 인기를 끌며 1조 1000억원을 돌파했다. 서울시도 내년 1월 소상공인 간편 결제 시스템인 ‘제로페이’와 결합한 모바일 지역화폐 2000억원을 발행한다.

지역화폐는 자치단체장이 발행하고, 그 지역에서만 쓸 수 있다. 소상공인 매출 증대가 목표인 만큼 대형 마트·프랜차이즈나 백화점, 대기업 계열사 등에선 사용할 수 없다. 자본의 역외 유출을 막고, 지역 경제 풀뿌리인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지방자치제 시행의 근본 이유는 경쟁이다. 지방정부 간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정책을 만들고, 최고의 정책들이 모여 나라의 행정 수준을 끌어올리는 게 지방자치제의 핵심이다. 지방정부 간 경쟁을 통해 지역화폐도 질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단순 종이 상품권에서 카드로, 카드에서 모바일로, 기술 발전과 함께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세금 지원을 받아 관광·산업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서 벗어나 직접 화폐 발행을 통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건 지방자치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혁신이다. 지방자치가 법과 사무, 행정을 넘어 주민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체감 분야로 확대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경제 활성화는 중앙정부만의 몫이 아니다. 지방정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 경제를 살려 달라는 지역민들 읍소에 지역 경제 활성화 ‘플레이어’로 나선 지방정부들이 있기에, 지방자치의 앞날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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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nam@seoul.co.kr
2019-12-2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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