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아베 1강’의 오만과 독선/김태균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아베 1강’의 오만과 독선/김태균 도쿄 특파원

김태균 기자
입력 2019-06-23 17:44
수정 2019-06-24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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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도쿄 특파원
김태균 도쿄 특파원
최근 일본에서 크게 논란이 된 것은 이른바 ‘2000만엔 보고서’였다. 아베 신조 총리의 자문기구인 금융심의회가 작성해 지난 3일 금융청이 발표한 ‘100세 시대에 대비한 금융조언’ 보고서 중 일부 내용이 발단이 됐다. 고령 부부들은 국가에서 주는 연금 이외에 2000만엔(약 2억원) 정도는 별도의 여유자금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는 대목. 정부 스스로 공적연금의 실패를 인정해 버린 듯한 모양새가 된 가운데 그로 인한 책임을 국민들의 몫으로 떠넘긴다는 비난이 이어졌다. 다음달 참의원 선거를 앞둔 집권 여당은 벌집 쑤신 꼴이 됐다.

문제는 이어졌다. 금융청을 관장하는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이 “정부의 입장과 다르므로 공식 보고서로 받지 않겠다”고 밝힌 것. 총리 자문기구가 만든 보고서를 정권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수용하지 않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야권은 “현실을 호도하는 전대미문의 폭거”라며 아소 부총리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제출했다.

여진은 계속됐다. 야당이 이 문제와 관련해 국회에서 개최한 공청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말을 ‘풀타임(전일제)으로 일하지 않는 등의 사람’으로 바꿔 부르라고 네모토 다쿠미 후생노동상이 지시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비정규직’에 들어 있는 ‘비’(非)라는 글자를 일하는 사람들에게 쓰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정부 측은 해명했다. 그러나 정책을 제대로 하기보다는 정부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표현을 지워 현실을 호도하려는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2000년 30% 수준이던 일본의 비정규직 비율은 현재 40% 수준으로 치솟아 있다.

지난달에는 ‘취직 빙하기 세대’라는 명칭을 ‘인생 재설계 제1세대’로 바꿔 부르기로 한 것이 큰 반발을 불렀다. 우리나라로 치면 ‘IMF 세대’에 해당하는 일본의 취직 빙하기 세대는 ‘잃어버린 20년’의 대표적인 희생자로, 사회 진출기에 극심한 취업난을 겪은 사람들이다. 고통을 겪은 세대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기는커녕 마치 커다란 시혜라도 내리듯 정부가 인생을 재설계해 주겠다는 식으로 피해자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는 비난이 빗발쳤다.

아베 정권이 장기화되면서 나타나는 부작용 중 하나는 ‘국민 중심’이 아닌 ‘정치 중심’의 발상과 정책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안정된 지지율이 지속되고 야당이 수권 정당으로서 역할을 전혀 못 하고 있는 데 따른 정권의 자신감이 자만과 오만으로 변질돼 현실에 반영되고 있다. 이는 국가를 이끌어 가는 엘리트 집단으로 자리매김해 온 전문 관료들의 위상이 아베 정권 들어 과거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약해지고 총리관저 등 정권 핵심부의 영향력이 확대된 부조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미 발표된 정부기관의 보고서를 부총리가 대놓고 휴지 조각으로 만들거나 어린아이 어르듯 표현을 달리함으로써 현상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과거의 일본에서는 좀체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밝은 부분은 국민들에게 드러내 알리고 어두운 부분은 가급적 감추고 싶은 것은 이 세상 모든 집권 세력의 공통된 희망이다. 특히 일본처럼 정치가 정부를 이끌고 가는 내각책임제하에서 선거를 앞둔 지금 그런 바람은 한층 더 간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사회적 약자에게 상처를 주고 정부 신뢰도를 스스로 훼손하는 것은 목전의 선거 승리만을 생각하는 꼼수에 불과할 뿐이다.

아베 정권의 행태를 보면서 새로운 꾸려진 청와대 경제팀이 떠올랐다. 성장 동력과 수출 여건 등 안팎의 경제 환경이 모두 어려운 상황이지만,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국민들에게 보다 진정성 있는 자세로 각종 난제를 끌어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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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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