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자들은 어떤 조직체에 대해 취재를 하면서 그 조직체가 제공하는 보도자료(news release)에 얼마나 의존할까? 정부나 기업체 등 취재원이 언론에 제공하는 보도자료는 기사작성의 골격을 이루는 중요한 자료이지만 신빙성의 문제가 있다. 유능한 기자는 보도자료를 독자적 취재를 위한 참고자료로만 사용할 뿐이지 그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고 한다. 탐사보도에 뛰어난 기자는 보도자료를 통해 오히려 무언가 ‘냄새’를 맡고 탐사에 뛰어든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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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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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그러나 국내의 신문들은 점차 보도자료에 대한 의존율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일간지의 기자들은 취재시 70∼80%까지 보도자료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자료이용의 방법에 따라 의존율 계산이 달라지겠지만 이러한 보도자료 의존은 심각한 저널리즘의 약화를 불러온다. 단적으로 말하면 기자들의 독자적인 취재능력을 상실시킨다. 기사는 획일화되고, 대변지의 성격을 띠며, 제3자적인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이러한 보도자료 의존현상은 외국 신문들도 점차 심해져 가고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기는 하지만 허약한 국내 신문 산업의 사정을 고려하면 여간 우려스럽지 않다.
지면은 넓어지고 경쟁은 가속된다. 인터넷신문의 등장으로 거의 무한대로 지면을 채워야 한다. 기자들의 숫자는 충분하지 않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전문성은 더욱 요구되고 있다. 반면 정부와 기업, 단체들의 전문성은 더 커지고 과거에 비해 언론홍보에 대한 기술과 대비도 강화되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요즘 일간지들의 보도자료 의존율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보도자료 의존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경제관련 기사이며 특히 기업관련 기사다. 기사의 전문성과 정보의 양, 정보독점, 기업이 제공하는 광고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본다. 취재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기업의 홍보인들은 기자들이 자신들이 제공하는 보도자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보도자료 의존율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경제부 기자들은 경제관련 기사가 통계자료가 복잡하고 출입 및 접근 통제가 심해 독자적 취재가 점차 어려워져 보도자료 의존율이 높아진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결코 보도자료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지 않으며 나름대로 내용을 확인하고 관점과 제목을 바꾼다고 말한다. 추가취재와 보완취재를 반드시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의 주장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독자들로서는 기자를 비롯한 언론인들이 지식과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고 독자적인 취재망을 통해 보도자료를 뛰어넘는 객관적인 기사와 심층 해설을 제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번 주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무분규사태 및 임금단체협상에 대한 서울신문의 보도기사와 해설기사, 논설은 모범을 보여주어 고무적이다. 현대 측의 보도자료를 이용하면서도 나름대로의 취재와 자료수집, 기자의 독자적 시각을 동원하여 독자와 사회에 대한 적절한 계몽을 주는 기사와 해설, 사설, 칼럼의 앙상블을 이루었다. 물론 현대 측이 제공한 보도자료와 비슷한 시각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보충자료와 과거의 어두운 파행기록을 같이 덧붙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특히 서울광장을 통해 현대중공업의 14년 무분규 파업 실태와 의미에 대해 역사적인 분석을 해주고, 나아가 정치권에 노조법의 개정안 확정을 ‘막다른 골목’으로 비유하여 강력히 요구하는 ‘에지’를 보여주었다.
독자들에게는 기자의 발품과 실력, ‘객관의 눈’이야말로 선전이 난무하는 이 세상을 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임을 기자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2009-12-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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