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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신용 사면/박정현 논설위원

[씨줄날줄] 신용 사면/박정현 논설위원

입력 2013-03-20 00:00
업데이트 2013-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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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의 역사는 로마시대에 시작됐다. 기원전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마르쿠스 브루투스에게 원로원 회의는 무죄판결을 내린다. ‘로마의 정의를 위해 브루투스의 행위를 잊어버리고 논란을 삼지 말자’는 것이다. 판결문의 그리스어 ‘잊어버린다’(Amnestia)에서 ‘사면’(Amnesty)이 유래됐다고 한다.

중세시대에 사면권은 왕권의 상징이었다. 영국왕 헨리 8세는 36년의 집권기간 중에 7만 2000명을 사형에 처한 반면에 자비심을 보여주기 위해 사면권을 행사했다. 절대권력처럼 인식됐던 사면권은 1689년에 제한되기 시작했다. 명예혁명으로 제정된 권리장전은 ‘무분별한 사면권처럼 법적 근거가 없는 왕권행사는 위법’이라고 규정했다.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이 새로 취임하고 나면 교통위반 사범에 대한 사면을 단행하는 ‘당선사례’ 관행이 있다. 그런 프랑스에서 노사분규 기간 중 사측에 재산상 손실을 끼쳤거나 경영진을 협박 또는 중상한 죄로 5년 이하 징역형을 선고받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사면해 주는 법안이 최근 상원을 통과했다. ‘노동자의 천국’이자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이미지는 더욱 짙어지게 됐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취임·퇴임을 전후하거나 성탄절, 광복절 등에 일반 또는 특별사면이 단행돼 왔다. 전두환 대통령 이후 이명박 대통령까지 6명의 대통령들이 국민대화합을 내세워 사면권을 행사한 횟수는 46차례. 이명박 정부는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생계형 음주운전자에게 사면을 단행했다.

사면권은 늘 정치적 논란에 서 있다. 언도된 형의 효력이 상실되거나 공소권이 상실되도록 하는 일반사면은 국민 인기끌기용이라는 지적을 받아왔고, 형의 집행이 면제되도록 하는 특별사면은 권력자의 선심용이라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그의 측근들을 포함한 특사를 임기 말에 단행해 비난을 자초했다. 이런 탓에 민주통합당은 특별사면도 일반사면처럼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는 사면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은 상태다.

박근혜 정부가 신용불량자 사면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외환위기 당시 신용불량자가 됐던 기록 때문에 은행에서 최하위 신용등급으로 분류돼 대출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중소기업인의 국민 제안을 수용하자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연대보증으로 금융거래가 끊겨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의 신용이 구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모쪼록 ‘신용 사면’이 고통 받는 국민들이 행복감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박정현 논설위원 jhpark@seoul.co.kr

2013-03-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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