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정책 목적보다 소중한 가치/성민섭 숙명여대 법학 교수

[열린세상] 정책 목적보다 소중한 가치/성민섭 숙명여대 법학 교수

입력 2009-11-23 12:00
수정 2009-11-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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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결과지상주의’가 사회 전체를 압도하면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켜 주지 않는다.’는 소중한 교훈을 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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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섭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성민섭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
황우석 교수 사건과 관련해 정운찬 총리가 한 말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아주 정확하게 지적한 뼈아픈 고언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하는 분이 국무총리로 있는데도 정부가 ‘소중한 교훈’을 망각한 채 세종시 문제를 다루는 모습을 보게 되는 건 정말 유감이다.

정부의 세종시 해법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개인적 판단으로는 정부의 세종시 해법이 그 기본방향에서만큼은 반대론자들의 주장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국민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너무 가볍게 번복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먼저 국민들에게 변경이 불가피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어야 한다. 특히 그 약속을 신뢰하고 기대한 해당 지역 주민들의 동의는 필수적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정부가 결코 작지 않은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이는 것 같다. 정책목적에 대한 확신 때문일 것이라고 아무리 좋게 봐준다 하더라도, 반드시 현 정권의 임기 내에 뭔가를 해 내려는 결과지상주의에 매몰된 탓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병력과 먹을 것, 백성의 신뢰 이 세 가지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의 신뢰라는 말은 경제가 최우선인 이 시대엔 그야말로 공자님 말씀일 뿐이라서 그런가? 국민의 신뢰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듯 오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정부의 태도가 매우 염려스럽다. 더구나 충청권과 나머지 지역의 대결 구도나 특정 지역의 연합 등을 은근히 부추겨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는 정치인들도 없지 않은 것 같으니 정말 걱정된다.

구성원들 사이에 불신이 쌓이고 갈등과 대립이 깊어지면 그 단체의 미래는 없다.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막말로 정치인들끼리야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으나, 그로 인해 국민들 상호 간에 불신과 갈등, 대립이 커지면 대한민국의 밝은 내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 정부는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하긴 역대 어느 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권 재창출 혹은 정권 획득을 위해 망국적 지역감정을 조장한 정치인들이 역대 정부의 요직을 차지했으며, 심지어 ‘정의’라는 명분 아래 정부가 앞장서서 편 가르기를 주도하기도 했다. 정말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태도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의 이런 무책임하고 무분별한 태도가 거시적 정책 추진과정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행정 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남용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위법행위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X파라치’ 제도다. 2001년 3월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대상으로 하는 카파라치 제도가 최초로 시행됐다가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비판 여론에 밀려 2003년 1월 폐지됐지만 언제 그런 비판여론이 있었냐는 식으로 학파라치, 세파라치, 영파라치, 음파라치, 봉파라치, 식파라치, 쇠파라치, 작파라치, 팜파라치, 성파라치 등등 무려 50여개의 ‘X파라치’ 제도가 시행되었거나 될 예정이라고 한다. ‘몰카’라는 민망한 수단과 ‘고발’이라는 불편한 방법을 ‘돈벌이’에 연결시켜 행정목적을 달성하는 이 제도는 고발하는 자와 고발당하는 자, 곁에서 지켜보는 자 모두를 슬프게 한다. 이런 제도를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까지 다양한 행정주체들이 경쟁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부끄럽고 충격적이다.

제발 행정목적 달성에 효율적이라는 말은 하지 말자. 행정목적 달성은 적합하고 적정한 수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조차 하고 싶지 않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행정인가?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성민섭 숙명여대 법학 교수
2009-11-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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