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수의학자요 생명공학자로 우뚝 섰다가 급전직하한 황우석 박사. 최초로 인간 체세포핵을 난자에 주입해 세포분화를 이끌어 내며, 불세출의 영웅으로 추앙받던 인물. 그를 추종불허의 인기인에서 반윤리적 과학자로 끌어내린 건 조작의 탄로였다. 진실과 진리의 바른 추적이 아닌 왜곡, 은폐의 병든 양심을 철저히 응징당한 것이다.
황우석 허위논문 사건 이후 수년 간 조작과 허위의 사슬이 줄줄이 드러났다. 신정아 학력조작이 불거지더니 인기 연예인, 교수, 정치인, 목사, 심지어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강남 모 선원의 주지까지. 자고 나면 터지는 허위와 조작의 연쇄 탄로에 많은 이들은 ‘속았다’는 억울함보다는 세상에 만연한 기만에 더 허탈해했을 것이다.
‘사진 저널리즘의 전설’로 영웅시되는 헝가리 출신 종군사진가 로버트 카파(1913∼1954년)의 대표작이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1936년부터 3년간에 걸쳐 스페인을 초토화시킨 스페인내전의 한 전투에서 총탄을 맞고 죽어간 병사의 모습을 담은 ‘쓰러지는 병사’. 스페인의 한 대학교수가 사진속 배경과 병사의 모습이 조작 연출된 허위임을 주장했다는데. 논란을 따라 사진속 현장을 추적한 취재진과 역사학자들이 교수의 손을 들어줬단다.
스페인 내전의 아픔과 긴박한 전투현장을 단 한장의 흑백사진으로 담아낸 ‘쓰러지는 병사’. 이 사진으로 명성을 얻은 로버트 카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거쳐 베트남 인도차이나전쟁 종군 중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서 사진기를 놓지 않았다는 그의 정신을 후대는 ‘카파주의’로까지 칭송했는데. 사후 55년만에 밝혀진 진실앞에 카파는 무슨 말을 할까.
청문회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허위와 조작으로 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라지는 우리의 유명인사들. 어디 고위직 후보자 청문회의 일그러진 인사뿐이랴. 제자의 논문까지 훔치는 표절 교수며, 외국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을 버젓이 베껴 시청자를 우롱하고도 할 말 다 하는 방송 제작진…. 이제 ‘카파주의’의 정의를 한번 바꿔봄은 성급한 것일까. ‘진실은 하나뿐이고 언젠가는 밝혀진다.’고.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황우석 허위논문 사건 이후 수년 간 조작과 허위의 사슬이 줄줄이 드러났다. 신정아 학력조작이 불거지더니 인기 연예인, 교수, 정치인, 목사, 심지어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강남 모 선원의 주지까지. 자고 나면 터지는 허위와 조작의 연쇄 탄로에 많은 이들은 ‘속았다’는 억울함보다는 세상에 만연한 기만에 더 허탈해했을 것이다.
‘사진 저널리즘의 전설’로 영웅시되는 헝가리 출신 종군사진가 로버트 카파(1913∼1954년)의 대표작이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1936년부터 3년간에 걸쳐 스페인을 초토화시킨 스페인내전의 한 전투에서 총탄을 맞고 죽어간 병사의 모습을 담은 ‘쓰러지는 병사’. 스페인의 한 대학교수가 사진속 배경과 병사의 모습이 조작 연출된 허위임을 주장했다는데. 논란을 따라 사진속 현장을 추적한 취재진과 역사학자들이 교수의 손을 들어줬단다.
스페인 내전의 아픔과 긴박한 전투현장을 단 한장의 흑백사진으로 담아낸 ‘쓰러지는 병사’. 이 사진으로 명성을 얻은 로버트 카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거쳐 베트남 인도차이나전쟁 종군 중 지뢰를 밟아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서 사진기를 놓지 않았다는 그의 정신을 후대는 ‘카파주의’로까지 칭송했는데. 사후 55년만에 밝혀진 진실앞에 카파는 무슨 말을 할까.
청문회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허위와 조작으로 해서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라지는 우리의 유명인사들. 어디 고위직 후보자 청문회의 일그러진 인사뿐이랴. 제자의 논문까지 훔치는 표절 교수며, 외국 방송사의 인기 프로그램을 버젓이 베껴 시청자를 우롱하고도 할 말 다 하는 방송 제작진…. 이제 ‘카파주의’의 정의를 한번 바꿔봄은 성급한 것일까. ‘진실은 하나뿐이고 언젠가는 밝혀진다.’고.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09-08-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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