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2년 영국왕의 사절 조지 매카트니가 청나라의 건륭제를 만나러 수만리 바다를 건너 황제의 여름 휴양지 열하에 도착했다. 황제를 배알하려는데 굴욕스러운 의전 문제가 생겼다. 황제에게 세 번 엎드리고 아홉 번 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천하의 중심으로 여기던 중국의 위세는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반세기 후 영국은 사절 대신 군함과 대포를 앞세우고 중국을 유린했다. 중국은 서구열강의 도도한 동진정책에 밀리고 심지어 오랑캐로 여기던 일본에마저 참패해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해 갔다. 더불어 중국인의 자존심도 무참히 허물어졌다. 중국의 민족주의는 이런 몰락과정에서 자주독립과 자존심을 되찾자는 운동으로부터 출발했다.
이미지 확대
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대표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대표
한편 명치유신 이래 서구의 기술과 제도를 도입하여 급속히 근대화를 이룩한 일본은 식민정책도 모방해 조선과 중국을 삼키려 했다. 일본의 민족주의는 망해가는 중국과 달리 욱일승천하는 국력을 배경으로 일본 중심의 아시아·태평양을 건설(대동아공영권)하자는 도전적 열기로부터 배태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중·일의 민족주의는 확연히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백년의 잠에서 깨어나 다시금 비상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현재 미국, 일본, 독일 다음 세계 4위인 중국의 경제규모가 2040년쯤 미국을 앞지를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의 군사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칭다오에서 개최된 해상 열함식은 세계로 뻗어 가는 중국의 군사력을 상징한다.
일본의 민족주의도 우경화 경향을 보이는 전후세대를 중심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전후세대는 과거사를 반성하기보다 오히려 히로시마 원폭과 같이 자신도 과거사의 희생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들은 일본도 정상적인 국가, 즉 정치대국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군사력도 증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 핵문제와 로켓 발사는 일본 우익의 재무장 요구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문제는 부상하는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의 민족주의가 경쟁 내지 대립의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일 사이에는 과거사문제, 일본의 우경화와 군비증강, 중국을 겨냥한 미·일 동맹, 타이완문제, 댜오위다오 영토분쟁, 일본의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진출 문제 등 난제가 수북하다. 이 모든 근저에는 21세기 아·태지역의 패권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 중·일 민족주의와 관련, 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할 두 가지 위험변수가 있다.
첫째, 중국 정부가 중화민족주의를 대내외 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외적으로 동북공정의 예와 같이 국제이슈에 민족주의 이념을 투입함으로서 장차 국제분쟁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 대내적으로 중화민족주의와 공산당 장기집권의 당위성을 교묘히 엮어서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장차 민족주의의 열기가 정부 통제를 벗어난다면 예상치 않은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일본 집권당의 우경화와 민족주의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태도다. 전후 장기집권해온 자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온건, 중도세력은 점차 도태되고 우익인사가 당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우익은 국내 인기저하를 만회하기 위해 과거사, 군사재무장 등을 거론함으로써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두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으로서 중·일 민족주의가 대립하거나 충돌하게 되면 악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한국으로서는 중·일 양국의 민족주의가 폐쇄적 중화나 대동아공영권 식으로 흐르지 않고 호혜평등과 근린협력에 입각한 열린 민족주의로 발전해 나가도록 중간자적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역시 민족주의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 만큼 우리 스스로 열린 마음으로 세계를 포옹해 나가야 할 것이다.
남상욱 유엔공업개발기구 서울투자진흥사무소 대표
2009-05-18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구글이 유튜브 동영상만 광고 없이 볼 수 있는 ‘프리미엄 라이트'요금제를 이르면 연내 한국에 출시한다. 기존 동영상과 뮤직을 결합한 프리미엄 상품은 1만 4900원이었지만 동영상 단독 라이트 상품은 8500원(안드로이드 기준)과 1만 900원(iOS 기준)에 출시하기로 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적절한 유튜브 구독료는 어느 정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