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반소매/김성호 논설위원

[길섶에서] 반소매/김성호 논설위원

입력 2009-05-09 00:00
수정 2009-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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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때로 유용한 약이 된다. 정신건강에 좋다고 했던가. 좋은 일도 많은데 나쁜 것까지 기억할 필요야. ‘완벽한 망각은 죽음과 같은 것’ ‘용서받을 수 없는 죄’. 고대 로마인들이 망각을 그렇게 여긴 건 아무래도 ‘자기 배반’이나 ‘자기 유기’의 죄책일 것이다.

날씨가 후텁지근해지면서 자잘한 일에 목소리를 높이고 얼굴을 붉힌다. 지나면 아무일도 아닌 것을. 순간에 목숨거는 우매함이 번번이 후회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경계할 삼독(三毒)을 욕심, 화냄, 어리석음의 탐(貪)진(瞋)치(痴)로 삼은 혜안은 탁월하다.

화 잘 내고 열 많은 탓에 ‘열쟁이’소리를 듣는다. ‘반소매 윗도리를 제일 먼저 입고 가장 늦게까지 걸치는 열쟁이’라는 선배의 놀림도 괜한 게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 선배에게 ‘반소매 0순위’를 뺐겼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내일은 꼭 반소매’를 며칠 전부터 다짐했지만 망각의 연속. 오늘도 버스에 몸을 싣고서야 긴소매 차림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오늘 그 선배는 다시 긴소매다. 망각도 헷갈린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09-05-0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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