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중국의 조삼모사/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중국의 조삼모사/오일만 논설위원

입력 2009-05-09 00:00
수정 2009-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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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첨단기술 욕심은 집요하다. 개혁·개방 초기 조심스러운 자세에서 벗어나 이제는 아주 노골적이다. 21세기 세계 패권국가의 꿈을 키우는 중국으로선 첨단기술 대국은 반드시 관철시켜야 하는 지상 명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술 습득 전략은 대체로 3단계로 나뉜다. 1단계는 화교기업을 통한 기술 이전이다. 개혁·개방 초기부터 대략 10년간 가전·섬유 등 경공업 분야에 총력을 기울였다. 2단계는 1990년대 초기부터 2000년 언저리까지 다국적 기업의 투자유치 전략이다. 알짜 기술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우뚝 서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2%가 부족했다. 저가 시장은 휩쓸었지만 고급 시장에는 접근도 못했다. 다국적 기업들은 호락호락 초첨단 기술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 지도부는 안달이 났다. 고심 끝에 빼어든 칼이 3단계 전략인 ‘바이 월드(세계 기업 사들이기)’였다. 중국의 인수·합병(M&A) 태풍이 전세계를 몰아쳤다. 중국의 대표 가전업체 하이얼과 TCL이 미국의 메이택과 프랑스 톰슨사를, 중국업체 레노보는 미국의 IBM PC 부분을 각각 인수했다. 2005년 상하이 자동차의 쌍용차 인수도 같은 맥락이다. M&A로 첨단 기술을 통째로 가져간다는 발상이다. 공교롭게도 중국의 산업 스파이들이 전세계를 무대로 무차별적으로 고급 기술을 빼냈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국이 최근 ‘IT시큐리티 강제인증제도(ISCCC)’를 추진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ISCCC는 IT제품을 중국에 수출하거나 중국에서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이 핵심제어 소프트 웨어 설계도 격인 소스코드를 중국 당국에 사전에 제출, 보안 인증을 받는 제도다. 이에 불응하면 해당 제품의 중국 수출·판매가 전면 금지된다.

반발이 거셌다. 미국과 일본은 지난 4일 ISCCC 도입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과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라는 강수를 뒀다. 결국 중국은 내년 5월 도입(1년 유예)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미·일 양국은 전면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의 조삼모사(朝三暮四) 전략을 간파한 것이다. 애써 개발한 소스코드다. ‘고양이에게 어물전 전체를 맡길 수 없다.’는 국제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2009-05-0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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