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쿠데타에 성공한 박정희 군부는 열달만인 1962년 3월16일 기존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전면 중단시키는 법률을 제정,공포하였다.이름하여 ‘정치활동정화법’이다.그런 한편으로는 공화당을 사전 조직해 이듬해 있을 예정인 민정이양에 대비했다.한마디로 말하면,운동시합을 하는데 상대팀 주전선수들은 모두 출전금지시키고 만만한 선수들만 그라운드에 나오도록 강제한 셈이다.그 결과 ‘정치활동 정화’ 대상이 된 주요인사 4000여명이 정치 행위를 전혀 하지 못한 6년여동안 공화당은 각각 두번의 대통령·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거둬 통치체제를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정치활동정화법은 악랄한 법률이었다.대상을 심사해 적격 여부를 판정하는 일부터 그 판정을 해제하는 것까지 일체를 쿠데타 세력이 결정하도록 했다.게다가 헌법에 위배되는지에 상관없이 효력이 지속되도록 했으며 판정에 대해 행정소송 등 일체의 불복 신청을 하지 못하게끔 했다.당시 정치활동을 금지한 기준은 제2공화국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행정부의 주요 직위에 오른 사람,민주당·통일사회당 등 정당의 간부를 지낸 이,쿠데타에 비판적인 언론인 등이었다.쿠데타 세력은 이 기준을 선별 적용해 정계를 움직이는 지렛대로도 악용했다.
정치활동정화법은 18년 후 ‘쌍둥이 동생’을 본다.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80년 11월3일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구시대 정치인’ 567명을 강제 은퇴시켰다.이 법의 적용기간은 당초 88년 6월30일까지였다.87년 대통령선거에서 독상을 받으려는 속셈이었으리라.하지만 국민 저항이 거세지면서,85년 3월까지 세차례에 걸쳐 정치활동 금지는 단계별로 해제됐다.
정치활동정화법이 며칠 전에야 공식적으로 폐지됐다.그 법을 비롯해 5·16 직후 나온 6가지 법률이 사문화했기에 이를 폐지한다고 법제처가 12월19일자 관보를 통해 공포한 것이다.진즉에 죽었다고 여긴 이 법들이 이 시기에 다시 이름을 드러낸 까닭은 무엇일까.행여나 민주주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경고는 아닌지,괜히 섬뜩해진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정치활동정화법은 악랄한 법률이었다.대상을 심사해 적격 여부를 판정하는 일부터 그 판정을 해제하는 것까지 일체를 쿠데타 세력이 결정하도록 했다.게다가 헌법에 위배되는지에 상관없이 효력이 지속되도록 했으며 판정에 대해 행정소송 등 일체의 불복 신청을 하지 못하게끔 했다.당시 정치활동을 금지한 기준은 제2공화국에서 국회의원을 지냈거나 행정부의 주요 직위에 오른 사람,민주당·통일사회당 등 정당의 간부를 지낸 이,쿠데타에 비판적인 언론인 등이었다.쿠데타 세력은 이 기준을 선별 적용해 정계를 움직이는 지렛대로도 악용했다.
정치활동정화법은 18년 후 ‘쌍둥이 동생’을 본다.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는 80년 11월3일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구시대 정치인’ 567명을 강제 은퇴시켰다.이 법의 적용기간은 당초 88년 6월30일까지였다.87년 대통령선거에서 독상을 받으려는 속셈이었으리라.하지만 국민 저항이 거세지면서,85년 3월까지 세차례에 걸쳐 정치활동 금지는 단계별로 해제됐다.
정치활동정화법이 며칠 전에야 공식적으로 폐지됐다.그 법을 비롯해 5·16 직후 나온 6가지 법률이 사문화했기에 이를 폐지한다고 법제처가 12월19일자 관보를 통해 공포한 것이다.진즉에 죽었다고 여긴 이 법들이 이 시기에 다시 이름을 드러낸 까닭은 무엇일까.행여나 민주주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경고는 아닌지,괜히 섬뜩해진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8-12-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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