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육조거리/함혜리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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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10-21 00:00
수정 2008-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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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세운 뒤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경복궁과 도성, 궁성, 관아를 모두 완공한 것은 태조 7년(1398년)에 이르러서다. 그해 4월26일 태조는 새 도읍의 모습에 흡족해하며 신도팔경(新道八景)을 그린 병풍 한벌씩을 좌정승 조준과 우정승 김사형에게 내렸다. 신도팔경에서 기전산하(한양을 중심으로 한 산하의 형세), 도성궁원(성곽과 궁궐의 모습)에 이은 제3경은 바로 열서성공(列署星拱). 궁궐 앞의 여러 관아들이 북극성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북두칠성 등 별들로 둘러싸여 배열된 모습을 읊은 것이다. 열서성공은 이후 육조거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조선시대 주작대로의 모습을 가리킨다.

육조거리는 경복궁이 준공되던 해인 1395년 정도전이 태조의 명을 받아 조성한 거리다. 광화문 앞에서 황토현(현재의 광화문 사거리)까지 이르는 대로로 오늘날 세종로의 전신이다. 광화문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우측에는 의정부와 이조·한성부·호조가 위치하고, 좌측에는 예조·중추부·사헌부·병조·형조·공조 및 사역원이 차례로 자리잡고 있었다. 여러 관아건물들이 보기 좋게 어우러졌던 육조거리는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과 함께 화재 피해를 입었다가 조선 말 대원군 때 본격 재건됐다.19세기 말까지 육조거리는 관아를 출입하는 관료들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그러나 구한말 이후부터 일제 강점기 주요 관공서들이 들어서면서 원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한다.1910년 한일합병과 함께 실시한 일제의 새로운 행정개편에 따라 육조거리는 광화문통으로 바뀌었다.

세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는 광화문광장 조성사업의 시공현장에서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시대별 도자기 파편 등을 근거로 육조거리 토층은 19∼20세기(구한말∼일제 강점기),16∼18세기(임진왜란 전후),14∼15세기(조선건국 시기)로 확연히 구분된다. 서울시는 육조거리 토층을 떠내 새롭게 조성되는 광장내에 전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역사를 다시 흙으로 덮어버린다는 계획이다. 그보다는 현장을 그대로 살리는 방법을 찾아줬으면 좋겠다.600년 도읍지라고 백번 외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교육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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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리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08-10-2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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