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끝에 서서 서쪽으로 드는 노을을 봅니다
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 오래되어도 썩지 않는 것은 하늘입니다
하늘이 붉어질 때 두고 간 시들이
생각났습니다 피로 써라 그러면……생각은
새떼처럼 떠오르고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어 마른 풀 몇개 분질렀습니다
피가 곧 정신이니……노을이 피로 쓴 시 같아
노을 두어 편 빌려 머리에서 가슴까지
길게 썼습니다 길다고 다 길이겠습니까
그때 하늘이 더 붉어졌습니다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하라……내 속으로 노을 뒤편이 드나들었습니다
쓰기 위해 써버린 많은 글자들 이름들
붉게 물듭니다 노을을 보는 건 참 오래된 일입니다
2008-08-09 2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