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주름/최태환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주름/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입력 2008-02-11 00:00
수정 2008-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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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고향은 넉넉했다. 변함없이 푸근했다. 버선발로 화들짝 뛰쳐나오는 정인(情人)과도 같다. 싸가지없이 잊고 지냈건만, 내색조차 않는다.‘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가고/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가나/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나를 키운 팔할은 바람이라는 미당을 떠올린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고향의 바람 앞에서 숨길 것이, 부끄러울 게 더 있을까. 고향 내음에 고단함도, 회한도 녹아내린다.

어머니는 묻는다. 언제 서울로 돌아가느냐고, 하루 더 있다 가면 안 되느냐고.30년 넘게 되풀이됐지만, 한번도 “네, 그럴게요.”는 없었다. 휜 허리가 더 처진 것 같다. 올려다 봐야 할 것 같은 싱크대를 애써 외면한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자식 떠날 때까지 분주하다. 어김없이 차례물림 생선과 과일을 봉지에 담는다. 주름은 푸석해진 얼굴 가득 번졌다. 누군가는 잘게 썰어 말리는 무말랭이를 보면 할머니의 주름이 생각난다고 했다. 가지런해서 더 슬프단다. 바로 고향 엄마의 주름이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2008-02-1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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