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문화의 동반자, 권력/코디 최 문화이론가·화가

[문화마당] 문화의 동반자, 권력/코디 최 문화이론가·화가

입력 2007-03-01 00:00
수정 200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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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시작된 산업화와 도시화는 새로운 노동관계를 형성하며 그에 따른 노동계급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계급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기존의 전통적인 문화의 개념을 위협하고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두가지 상이한 문화가 나타났다.

하나는 노동계급의 소비를 목적으로 하는 상업주의 문화로 대량문화, 대도시문화, 그리고 대중문화가 여기에 속한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집단과 문화가 급진적 개혁론자들에 의해 정치적 선동에 이용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한 예로 새로운 노동계급과 문화는 1838년 영국 노동계급의 개혁운동(Chartism)의 근간이 됐으며, 훗날 그것은 노동당이 영국에서 득세하는 신좌파 운동으로까지 연결됐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구조가 급변하면서 노동계급의 불만은 극에 달했고, 기득권은 더욱 위협받으며 기존문화는 그 방향성을 잃어갔다.

문화연구는 바로 이 시기에 문화의 방향성과 사회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필자는 20세기말 한국의 문화와 1960년대 영국문화가 겪은 혼란의 과정 속에서 흡사한 부분을 발견한다.

1960년대 미국의 로큰롤에 매료된 영국 젊은이들의 모습과 20세기말, 한국의 청년문화 속에 뿌리내린 미국의 힙합,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젊은이들의 의식구조가 그것이다.

1960년대 영국은 문화적 가치관이 흔들리고 청소년 비행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이른바 ‘테디보이(teddy boy)’로 인한 진통을 겪게 된다. 남부 런던의 노동자 계층을 배경으로 한 그들은 기름을 잔뜩 발라 뒤로 빗어 넘긴 머리, 발목이 좁아 꼭 끼는 바지, 벨벳 깃이 달린 소매 긴 재킷, 구두 끈 모양의 넥타이, 고무로 창을 댄 구두 등.

1차 세계대전 이전 에드워드 7세 때의 상류층 차림새를 흉내냈다. 그것은 곧 계급상승을 꿈꾼 노동자들의 반항심리의 표출이었다.

당시 수입된 미국의 로큰롤은 노동자 출신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앞세웠다. 이는 귀족계급으로부터 소외된 노동계급 젊은이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사업가들은 그들의 기호에 맞춰 이를 재빨리 상품화했다.

마침내 영국의 문화는 변해갔고, 영국은 ‘로큰롤의 천국’이 됐다. 미국 문화가 영국의 대중문화를 장악하는 문화적 권력이동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는 1990년대 들어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을 누리게 됐지만 젊은이들은 ‘후진적인’ 정치행태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들은 60∼70년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갈등하거나 80년대 정치적 부조리에 대항하던 세대가 아니다.

자유분방한 미국의 대중문화가 대대적으로 유입되면서 미국에 대한 증오와 연민이 교차하는 가운데 기성세대에 대한 추상적 불만을 간직한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수입된 미국의 문화 중에서도 힙합은 미국의 기득권 백인사회에 대한 불만 속에 흑인 스스로를 소외그룹으로 규정하고, 성난 짐승처럼 저항과 폭력, 섹스와 물질만능을 노래했다.

힙합의 이같은 특성은 우리 젊은이들의 불만감과 소외감을 해소해주는 유력한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사업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문화상품이 됐다.

결국 힙합은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여과과정을 거쳐 젊은이들의 상징문화로까지 발전했다.

이처럼 20세기 이후의 문화의 침략과 혼종, 나아가 새로운 문화의 탄생과정을 살펴보면 정치사회적 현실이야말로 ‘문화의 반려자’임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정치와 사회, 그리고 문화가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선순환의 트라이앵글’을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코디 최 문화이론가·화가
2007-03-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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