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불 꺼진 바둑판/우득정 논설위원

[길섶에서] 불 꺼진 바둑판/우득정 논설위원

우득정 기자
입력 2006-12-01 00:00
수정 2006-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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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 어느 새벽 고향의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다.‘집에 다녀간 지 1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하는 생각과 동시에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친다. 누나는 “아버지가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며 연방 울먹인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한달여에 걸친 입원 끝에 헝클어진 기억의 실타래가 조금이나마 제 위치를 찾기 시작했다. 그래도 매일 하는 안부전화를 하루라도 거르면 “요즘 막내에게서 통 전화가 없다.”고 푸념한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급속도로 기억력이 감퇴되는 아버지를 보며 어떤 책에서 본 ‘불 꺼진 바둑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바둑판은 나이가 들면서 하나씩 불이 꺼지면서 그 부분은 망각의 늪으로 사라진다는 얘기다. 어머니와 관련된 60년의 기억들을 억지로 지우려다 보니 아버지 뇌 속의 바둑판이 한꺼번에 정전소동이 빚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1년이 넘도록 어머니 얘기를 단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혹시 아버지는 자식들 몰래 어머니의 기억 회로에 불을 켜고 그때의 추억을 곱씹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2006-12-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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