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윤리의 핵심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하는 것이다. 이건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취재보도 수칙이다. 그러나 사실을 보도하는 이 세상 어느 기자도 특정 사건에 대하여 “이것이 사실이다.” 하고 단정해 말할 수 없다. 기자가 한정된 시간에 사실의 모든 면을 총체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기자는 사실이라는 코끼리 앞에서 늘 장님 신세가 된다.
무엇이 사실인가? 이에 관하여 명답을 내놓은 기자가 워터게이트 취재로 필명을 얻은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기자다. 그는 재판정에서 판사가 한 탐사보도 내용에 대해 사실이라고 믿느냐고 묻자, 그 기사가 “사실에 관한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이라고 답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기자가 확보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가 쓴 기사는 사실로 간주해야 한다.
사실이란 안팎으로 상충하는 요인을 아우르고 있다. 내적으로는 사실 자체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외적으로는 그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기자는 이런 내외적 요소를 최대한 배려하여 사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우드워드 기자의 기준을 따르자면, 그렇게 할 때 기자는 사실에 관한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시청취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을 보도해야 하는 취재보도의 기본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가 뜨거운 정치 쟁점이 된 적이 있다. 보안법은 기본권을 제약할 개연성을 안고 있다. 그 가능성을 거증하는 예는 우리 현대사에 수두룩하게 많다.
보안법이 폐기된다면 국기를 흔드는 일이 발생할 개연성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각론으로 들어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아울러 배려한 절충점을 찾아내 국민통합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폐기론이나 고수론의 한편에 서서 반대편을 보수 골통이라거나 좌파 용공으로 딱지 붙이기(name calling)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편향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FTA 문제나 전시작전권 문제 역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이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두 문제가 다 총론적으로는 긍정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매우 많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총론이 아니라 각론으로 들어가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여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공론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은 총론적으로 어느 한편에 서서 다른 편에 대해 극언을 불사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초기에 언론이 정파성에 충실함으로써 고정 독자를 확보하던 정론지시대가 있었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을 남긴 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자기 친구더러 자기 정파에 충직한 신문을 만들도록 권해 조그만 신문이 경영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정론지가 판을 쳤다. 이런 정파상업주의 하에서 사실은 왜곡될 대로 왜곡되었다. 우리 언론은 지금 선진국에서는 이미 박물관에 처박힌 그 정파상업주의로 공론장을 어지럽히고 있다.“이제는 은폐의 종말이 왔다. 일방적인 해석의 종말이 왔다. 이 기사가 특정 정당에 유리할까 불리할까 생각하며 기사를 쓰는 시대의 종말이 왔다.” 뉴욕 트리뷴의 화이트 리드(White Reid)가 한 이 말을 우리 기자가 외칠 때 비로소 우리 저널리즘도 선진국 문턱을 넘어설 것이다.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무엇이 사실인가? 이에 관하여 명답을 내놓은 기자가 워터게이트 취재로 필명을 얻은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기자다. 그는 재판정에서 판사가 한 탐사보도 내용에 대해 사실이라고 믿느냐고 묻자, 그 기사가 “사실에 관한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이라고 답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기자가 확보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그가 쓴 기사는 사실로 간주해야 한다.
사실이란 안팎으로 상충하는 요인을 아우르고 있다. 내적으로는 사실 자체에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외적으로는 그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람이나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기자는 이런 내외적 요소를 최대한 배려하여 사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우드워드 기자의 기준을 따르자면, 그렇게 할 때 기자는 사실에 관한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시청취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확보 가능한 최선의 버전을 보도해야 하는 취재보도의 기본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때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가 뜨거운 정치 쟁점이 된 적이 있다. 보안법은 기본권을 제약할 개연성을 안고 있다. 그 가능성을 거증하는 예는 우리 현대사에 수두룩하게 많다.
보안법이 폐기된다면 국기를 흔드는 일이 발생할 개연성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이 해야 할 일은 각론으로 들어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아울러 배려한 절충점을 찾아내 국민통합을 이루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폐기론이나 고수론의 한편에 서서 반대편을 보수 골통이라거나 좌파 용공으로 딱지 붙이기(name calling)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편향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FTA 문제나 전시작전권 문제 역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이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두 문제가 다 총론적으로는 긍정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매우 많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총론이 아니라 각론으로 들어가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여 궁극적으로 바람직한 공론을 창출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은 총론적으로 어느 한편에 서서 다른 편에 대해 극언을 불사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초기에 언론이 정파성에 충실함으로써 고정 독자를 확보하던 정론지시대가 있었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명언을 남긴 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자기 친구더러 자기 정파에 충직한 신문을 만들도록 권해 조그만 신문이 경영적으로 성공을 거두자 정론지가 판을 쳤다. 이런 정파상업주의 하에서 사실은 왜곡될 대로 왜곡되었다. 우리 언론은 지금 선진국에서는 이미 박물관에 처박힌 그 정파상업주의로 공론장을 어지럽히고 있다.“이제는 은폐의 종말이 왔다. 일방적인 해석의 종말이 왔다. 이 기사가 특정 정당에 유리할까 불리할까 생각하며 기사를 쓰는 시대의 종말이 왔다.” 뉴욕 트리뷴의 화이트 리드(White Reid)가 한 이 말을 우리 기자가 외칠 때 비로소 우리 저널리즘도 선진국 문턱을 넘어설 것이다.
김민환 고려대 신문방송학 교수
2006-09-2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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