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경제학이 더욱 필요한 때다/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열린세상] 경제학이 더욱 필요한 때다/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입력 2006-09-25 00:00
수정 2006-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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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에서의 핵심단어를 하나 꼽으라면 ‘선택’일 것이다. 오늘 점심에 뭘 먹을까에서부터 성장이냐 분배냐, 그리고 개인에서부터 국가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것이 바로 경제학이다.

이러한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 즉, 기회비용이 존재한다. 그래서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바로 경제학의 주된 모습이라 하겠다. 이처럼 뭘 선택하든지 대가가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에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늘 냉정하고 차갑다고 인식된다. 그러나 우리는 선택의 대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싫지만 인정해야 한다. 개인의 선택이 아닌 정부관료와 정치인의 국가와 관련된 선택이라면 더욱 더 선택에 따르는 대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대가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국민들에게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경우 국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엄청나다. 우리는 이를 인기영합이라고 하기도 하고 정치왜곡이라고도 한다.

‘비전 2030’을 보자. 비전 2030의 기회비용은 1100조원이라는 재원을 갖고 얻을 수 있는 여러 이득들 중에서 가장 큰 것이 될 것이다. 가령 1100조원을 국민들의 세금을 줄여주는 데 사용했을 경우, 우리 국민의 후생이 증진하고 또 국민소득이 높아지는 정도가 다름 아닌 비전 2030의 기회비용일 수 있다. 그렇다면 비전 2030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1년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 대안별로 기회비용을 얼마나 검토했을까. 김영삼 정권 말(1997년)의 ‘21세기 국가과제’나 김대중 정권 말(2002년)의 ‘2011 비전’처럼 기회비용의 계산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정권말기에 한번쯤 내놓아보는 장기계획정도인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똑똑한 정부는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정부가 아니라 이걸하면 기회비용이 가장 작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정부이다. 비전 2030과 같은 장기비전은 어쩌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다음 정권이 선택하지 않으면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금개혁, 개성공단, 한·미 FTA 등등은 그 선택이 한번 내려지고 나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한번의 선택이 아주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치는 국민연금개혁의 경우 기회비용의 계산은 철저해야 한다.1988년 ‘조금 내고 많이 받는’ 국민연금을 선택한 것의 대가를 지금까지도 톡톡히 치르고 있고 이번에도 바로잡지 못하면 앞으로도 수십년간 피해는 더욱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늘 기회비용을 외치는 경제학자들은 가슴이 차갑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좋은 일 하려는데 늘 재원 운운하는 방해꾼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때로 복지정책은 경제학자들에게 맡겨 두면 안 된다는 인식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적어도 정책을 선택할 경우 경제학적 분석은 필수적이다. 이 정책을 실시하면 영향을 받게 될 대상이 누구인가에서부터 그 대상이 어떻게 영향을 받아서 행동하게 될지에 대해 분석하는 것이 경제학적 분석이다.

다시말해서 경제학에서는 단순한 대상자의 파악보다는 대상자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이른바 동태적 분석이 중요하다. 또,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람 그리고 사회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실험과 과학적 분석이 전제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념과 철학이 등장할 수 있다. 정책의 파급효과를 짚어보기도 전에 미리 이 정책의 성격이 보수니 진보니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정책을 논함에 있어서 이념을 앞세우는 것이야말로 인기영합주의와 정치왜곡의 전형이다.

최근 들어 경제학자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수없이 많은 국가적 선택이 비경제학적 분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학자 역시 가슴은 뜨겁지만 머리는 늘 차갑게 유지하려 애쓴다는 믿음을 국민들에게 심어줄 필요 또한 더욱 커지고 있는 시점이다.

안종범 성균관대 경제학 교수
2006-09-2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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