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지난 12일 내각회의에서 1954년 이후 한국의 독도영유는 ‘불법점거’라며,“일본은 늦어도 17세기 중반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고,1905년 내각회의가 이 독도영유권을 재확인 의결했다.”는 답변서를 공식 결정했다. 이는 전혀 근거가 없는 새빨간 거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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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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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두 어부가 조선 울릉도와 독도에 월경하여 고기잡이 다녀오겠다고 청원을 내자,1618년 ‘죽도(울릉도)도해면허’와 1656년 ‘송도(독도)도해면허’를 내 준 일이 있다. 이때 도해면허는 외국에 월경하여 나갈 때만 내어주는 오늘날의 여권과 유사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 도해면허는 도리어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영토이고 일본영토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선측 항의를 받은 도쿠가와 막부는 1696년 1월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죽도(울릉도)도해면허’와 ‘송도(독도)도해면허’를 취소했으며, 울릉도·독도로 일본어부들의 출어를 엄금하는 명령을 내렸다. 이 사실은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 일본 내무성 ‘공문록(公文錄)’,‘조선통교대기(朝鮮通交大紀)’ 등 일본고문헌에 잘 기술되어 있다.
17세기 중엽 일본의 독도영유 확립은 커녕 도리어 독도는 조선고유영토였고, 일본 도쿠가와 정부도 이를 조선영토로 재확인하여 조선정부에 보내 온 1696∼1699년의 공식 일본외교문서가 보관되어 있다.1905년에 일본정부 내각회의가 일본의 독도영유를 재확인했다는 일본정부의 의결도 거짓이다. 일본정부는 1905년 1월28일 한국정부와 국민 몰래 독도를 처음으로 영토편입을 결정할 때 독도가 ‘주인없는 땅(무주지)’이고, 나카이라는 일본어업가가 1903년 독도 연해에서 고기잡이한 일이 ‘무주지선점(無主地先占)’이 된다고 근거로 내세웠다. 이때에 일본 내무성은 그 섬이 조선 우산도(于山島)여서 한국영토라는 의견을 냈고, 나카이도 이 섬이 한국영토이므로 한국정부에 고기잡이 청원서를 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해군성·외무성이 앞장서서 ‘무주지’라고 억지를 부리며 영토야욕으로 독도를 침탈키로 하였다.
주목할 것은 1905년 일본 내각회의가 독도는 ‘무주지’이기 때문에 처음으로 일본에 영토 편입한다는 결정은 현 일본정부의 17세기 중엽 일본 영유권 확립주장을 부정한다는 사실이다.17세기 중엽에 일본 독도영유권이 확립되어 있었다면 1905년에 새삼스럽게 일본 정부가 독도를 무주지라고 하면서 ‘처음으로 영토편입’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일본정부가 1905년 내각회의에서 일본의 독도영유권을 재확인했다는 주장은 따라서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은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잘 알면서도 영토탐욕으로 독도 ‘영토편입’결정을 하고 한국정부와 국민 몰래 독도를 침탈한 것이다. 그리고 1910년에는 아예 한반도 전체를 강점 침탈하였다.
국제법상의 기관인 연합국최고사령부는 청·일전쟁의 해인 1894년 1월1일을 기준일로 일본제국주의가 그 이후 침탈·편입한 모든 영토는 원주인에게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연합국은 1946년 1월29일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 제677호로 독도를 탐욕에 의해 일본제국주의가 침탈한 토지로 규정해서 일본영토에서 제외하여 한국에 반환하였다.
이제 일본의 극우파 신팽창주의 정권이 구 일본제국주의를 계승하여 궤변을 토하며 또 독도를 침탈하려고 도발해 온다. 한국 국민과 정부는 일본의 신팽창주의적 도전에 당당히 적극 대응하여 주권과 영토를 굳게 지켜야 한다.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독도학회 회장
2006-05-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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