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피노체트와 후지모리/ 이목희 논설위원

[씨줄날줄] 피노체트와 후지모리/ 이목희 논설위원

이목희 기자
입력 2005-11-26 00:00
수정 2005-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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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급 독재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길쭉한 나라 칠레에서 곤경에 처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과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이 그들이다. 피노체트는 칠레 사법부의 끊임없는 과거 단죄 노력에 쫓기면서 다시 가택연금 상태다. 후지모리는 칠레 당국에 억류돼 있다.

칠레는 행정·군사제도에서 일본처럼 프로이센을 따랐다. 피노체트는 군에서 뼈가 굵은 무골(武骨).1973년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1990년까지 철권통치를 했다.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상당 기간 총사령관직을 유지하며 군부에 실권을 행사했다. 리카르도 라고스 현 대통령 집권 후 피노체트 세력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개헌을 할 정도였다.

후지모리는 일본계 이민 2세로 사무라이 정신이 대단하다.1990년 페루 대통령에 당선된 뒤 친위 쿠데타, 의회해산을 비롯해 피노체트 못지않은 독재 면모를 보여 줬다. 부인 수사나 히구치가 정계진출을 시도하는 등 순종하지 않자 ‘영부인 자격박탈’을 공식선언, 쫓아내기도 했다. 후지모리는 2000년 부정선거 시비를 피해 일본으로 도피했다. 권토중래를 노리던 그는 이달 초 미국·멕시코를 거쳐 페루 입국을 시도하다 칠레 당국에 체포됐다. 최근 칠레가 페루와 경제수역 다툼이 있는 것을 이용해 보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한다. 사무라이를 숭상하는 일본 여성 기업가 가타오카 사토미가 후지모리의 새 애인이자 후견인이다. 사토미의 부친은 재일 한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피노체트와 후지모리의 차이는 나이. 피노체트는 어제 90세 생일을 맞았다. 치매 증세를 보이는 그가 생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관심사다. 후지모리는 67세로, 한번 더 권좌를 노려볼 연배다. 내년 4월 페루 대선을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2위를 달리고 있으니 아주 헛된 꿈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인 루르데스 플로레스 전 하원의원이 여론조사 선두를 좀처럼 내주지 않고 있다. 특히 페루 중앙선관위는 후지모리의 출마자격을 박탈할 움직임마저 보인다.

새달 실시되는 칠레 대선도 비슷한 맥락에서 주목된다. 역시 여성인 미셸 바첼레 전 국방장관의 당선이 유력하다. 피노체트 쿠데타를 반대하다 옥사한 공군 장성의 딸인 바첼레는 세 자녀를 둔 독신 여성으로 무신론자. 남성 위주의 보수 가톨릭국가에서 불리한 출마조건이다. 이웃한 칠레·페루에서 독재자와 함께 마초의 몰락이 동시에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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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5-11-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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