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혼 경향이 두드러져 결혼 적령기가 따로 없다지만 그래도 미혼자들에게는 결혼이 설렘과 함께 ‘숙제’처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30대 후반의 노총각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여태 집도 없어요?”라는 말이라 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그동안 뭐 했냐?”는 말도 싫어 신붓감 소개를 아예 거절한단다.
2년차의 29살 남자 직장인은 “언제나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달에 100만원씩 저축하지만 전세금이라도 마련하려면 10년은 걸리겠다. 부모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은데….”라고 남들의 결혼소식이 들려오는 가을이라 더 싱숭생숭한 듯 말했다. 불쑥 “도움받을 수 있으면 받지, 뭐…”라고 말하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최근 들은 ‘바나나’의 결혼이야기가 생각나서다.
겉은 노랗지만 껍질을 벗기면 하얗다는 뜻으로, 흔히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태어나 자란 교민 2세들을 일컬어 1세대들이 ‘바나나’라고 한단다. 한국에서 어학연수중에 만나 결혼한 ‘캐나다바나나’와 ‘호주바나나’는 결혼 1년 전부터 스스로 주축이 돼 계획을 짜고, 비용을 마련하며 결혼식을 준비했다. 흥겹기까지 한 결혼식에서 부모는 경제적인 부담이 없어서 오히려 섭섭함을 느꼈을 정도로.
결혼식에 참석한 10대 아이들을 둔 ‘기러기 엄마’들은 “이런 풍습을 봤으니 우리 아이들도 한국식으로 나중에 비용을 부모에게 왕창 씌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서양의 결혼풍습을 봤다고 그렇게 당장 벤치마킹을 할까. 그 말을 들으며 함께 웃었지만 정작 그 엄마들의 기대는 어긋날 것이란 생각도 했다.
흔히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 한다. 영악한 젊은이들은 이미 이를 간파하고 있다.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미래의 결혼비용에 대해 질문했더니 36%가 ‘부족분을 부모님께 부탁하겠다.’고 답했다. 부모에게 ‘상당부분’ 혹은 ‘전액’ 의존하겠다는 학생도 무려 30%나 됐다. 결국 대부분이 부모의 도움을 고려하는 셈이다.
하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결혼을 늦출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출산율이 낮아지는 것 같은) 문제가 생긴다면 부모입장에선 적극적으로 돕기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부모 잘 만난 덕’에 결혼하고, 그렇지 못하면 결혼을 늦출 수밖에 없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좌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동안 보육을 개인의 책임으로 미루다가 저출산이란 문제로 이어졌음에 비춰볼 때, 만혼 역시 결코 사적인 일로 축소할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결혼인구 비율 1% 증가에 합계출산율을 0.342명 높일 수 있다는 연구를 내놓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 결혼장려정책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기혼층 중심의 출산 대책보다 결혼율을 높이는 정책 개발에 주력한다는 지적과 함께, 싱가포르처럼 주택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결혼장려금 지급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바나나’의 사례처럼 비용만 마련한다고 결혼할 수 있는 게 아닌 현실은 의식변화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낮은 결혼율과 함께 높아지는 이혼율을 생각할 때, 더욱 문제해결은 쉽지 않다.
최근 결혼식에서 들은 주례사가 생각난다.“오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여러분들은 모두 이 결혼을 행복하게 유지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줘야 합니다.”라고 주례선생은 목소리를 높였다.“그냥 갈비탕 먹고 가라는 게 아녜요. 여러분들, 저기 뒤에 소곤소곤 이야기하시는 분들…. 이 두 사람이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만 축하할 것이 아니라 아들딸 여럿 낳는지도 관심가져야 하고, 아이 돌볼 사람이 없을 때는 적극적으로 돕기도 하고, 또 두 사람이 서로 의견충돌이 일어나 싸움이라도 하면 다시 사이좋게 되도록 돌봐야 합니다. 약속하시죠?”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출산세를 신설한다는 말도 나오니까 “돈 없어 결혼이 늦어지는데 이러다 ‘만혼세’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라는 우스개가 씁쓰레한 뒷맛을 남긴다. 결혼이 국가정책이 돼야 한다면 어떤 주례사처럼 구체적으로 행복한 결혼정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허남주 주말매거진WE팀장 hhj@seoul.co.kr
30대 후반의 노총각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여태 집도 없어요?”라는 말이라 했다.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그동안 뭐 했냐?”는 말도 싫어 신붓감 소개를 아예 거절한단다.
2년차의 29살 남자 직장인은 “언제나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달에 100만원씩 저축하지만 전세금이라도 마련하려면 10년은 걸리겠다. 부모님 도움은 받고 싶지 않은데….”라고 남들의 결혼소식이 들려오는 가을이라 더 싱숭생숭한 듯 말했다. 불쑥 “도움받을 수 있으면 받지, 뭐…”라고 말하려다 얼른 입을 다물었다. 최근 들은 ‘바나나’의 결혼이야기가 생각나서다.
겉은 노랗지만 껍질을 벗기면 하얗다는 뜻으로, 흔히 미국이나 캐나다 등에서 태어나 자란 교민 2세들을 일컬어 1세대들이 ‘바나나’라고 한단다. 한국에서 어학연수중에 만나 결혼한 ‘캐나다바나나’와 ‘호주바나나’는 결혼 1년 전부터 스스로 주축이 돼 계획을 짜고, 비용을 마련하며 결혼식을 준비했다. 흥겹기까지 한 결혼식에서 부모는 경제적인 부담이 없어서 오히려 섭섭함을 느꼈을 정도로.
결혼식에 참석한 10대 아이들을 둔 ‘기러기 엄마’들은 “이런 풍습을 봤으니 우리 아이들도 한국식으로 나중에 비용을 부모에게 왕창 씌우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서양의 결혼풍습을 봤다고 그렇게 당장 벤치마킹을 할까. 그 말을 들으며 함께 웃었지만 정작 그 엄마들의 기대는 어긋날 것이란 생각도 했다.
흔히 결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라 한다. 영악한 젊은이들은 이미 이를 간파하고 있다.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미래의 결혼비용에 대해 질문했더니 36%가 ‘부족분을 부모님께 부탁하겠다.’고 답했다. 부모에게 ‘상당부분’ 혹은 ‘전액’ 의존하겠다는 학생도 무려 30%나 됐다. 결국 대부분이 부모의 도움을 고려하는 셈이다.
하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결혼을 늦출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출산율이 낮아지는 것 같은) 문제가 생긴다면 부모입장에선 적극적으로 돕기라도 해야 할지 모르겠다.‘부모 잘 만난 덕’에 결혼하고, 그렇지 못하면 결혼을 늦출 수밖에 없는 우스꽝스러운 현실을 좌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다. 그동안 보육을 개인의 책임으로 미루다가 저출산이란 문제로 이어졌음에 비춰볼 때, 만혼 역시 결코 사적인 일로 축소할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결혼인구 비율 1% 증가에 합계출산율을 0.342명 높일 수 있다는 연구를 내놓았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직접적인 대책이 결혼장려정책이라는 것이다. 일본이 기혼층 중심의 출산 대책보다 결혼율을 높이는 정책 개발에 주력한다는 지적과 함께, 싱가포르처럼 주택 지원을 포함한 다양한 결혼장려금 지급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바나나’의 사례처럼 비용만 마련한다고 결혼할 수 있는 게 아닌 현실은 의식변화를 기대하는 것만큼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낮은 결혼율과 함께 높아지는 이혼율을 생각할 때, 더욱 문제해결은 쉽지 않다.
최근 결혼식에서 들은 주례사가 생각난다.“오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 여러분들은 모두 이 결혼을 행복하게 유지하는 데 직접적인 도움을 줘야 합니다.”라고 주례선생은 목소리를 높였다.“그냥 갈비탕 먹고 가라는 게 아녜요. 여러분들, 저기 뒤에 소곤소곤 이야기하시는 분들…. 이 두 사람이 새 인생을 시작하는 것만 축하할 것이 아니라 아들딸 여럿 낳는지도 관심가져야 하고, 아이 돌볼 사람이 없을 때는 적극적으로 돕기도 하고, 또 두 사람이 서로 의견충돌이 일어나 싸움이라도 하면 다시 사이좋게 되도록 돌봐야 합니다. 약속하시죠?”
저출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출산세를 신설한다는 말도 나오니까 “돈 없어 결혼이 늦어지는데 이러다 ‘만혼세’까지 나오는 것 아니냐?”라는 우스개가 씁쓰레한 뒷맛을 남긴다. 결혼이 국가정책이 돼야 한다면 어떤 주례사처럼 구체적으로 행복한 결혼정책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허남주 주말매거진WE팀장 hhj@seoul.co.kr
2005-10-14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