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봉황과 용/이목희 논설위원

[씨줄날줄] 봉황과 용/이목희 논설위원

이목희 기자
입력 2005-09-23 00:00
수정 2005-09-23 08:08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나라의 도장’ 국새가 바뀔 처지에 놓였다는 소식을 들으며 봉황과 용의 싸움이 벌써 걱정된다. 감사원은 사용중인 국새에서 균열 부분을 발견, 곧 행자부에 교체를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국새제작자문위원회까지 구성하는 등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국새가 6년만에 금이 갔다니 한심한 노릇이다.

1999년 이전 옛 국새의 손잡이는 거북이 모양이었다. 중국 황제가 변방 제후들에게 내려준 도장에 거북이가 새겨 있었다.‘복종’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거북이를 국새 장식으로 선택한 당시 위정자들의 무신경이 놀랍다. 새 국새를 만들면서 처음 검토했던 상징물은 용이었다.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 황제에 오르면서 제작한 ‘대한국새’도 용을 상징물로 썼다. 용을 황제급으로 보았던 셈이다.

하지만 반론이 거세게 일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로 사용하는 문장은 봉황이다. 국새를 거기에 맞추는 게 낫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더해 기독교계의 반발이 있었다. 용은 뱀과 동일시되며,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사탄이 용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국새 손잡이는 봉황으로 결론났다.

봉황과 용의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역사적으로 봉황 무늬는 제후국에서 주로 쓰였으므로 용보다 격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여러 역사책을 보면 봉황과 용의 선후(先後)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중국 황제들이 용 무늬를 애용했지만, 봉황 역시 황제를 상징했다. 봉문(鳳門, 황제의 궁문), 봉거(鳳車, 황제의 수레) 등 예는 많다.

한편으로 동이족이 상고시대 용봉문화(龍鳳文化)를 주도했다는 학설이 만만치 않다. 봉황과 용 모두 동이족의 상징물이라는 것이다. 중국 중원을 차지하지 못한 배달민족이 한반도쪽으로 옮겨가면서 봉황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일각에서 동이족을 봉황족, 중국 민족을 용족이라고 부르는 배경이 된다.

봉황을 용보다 낮춰볼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봉황·용 논쟁 가열은 중국에 대한 역사적 열등의식의 표출로 비칠 우려가 있다. 다시 국새를 만든다면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세련미, 견고함을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금 국새를 가진 나라는 한·중·일 정도라고 한다.IT강국답게 차제에 국새라는 개념을 박물관에 보내는 방안도 생각해보자.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2005-09-23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불장인 국내증시에서 여러분의 투자성적은 어떤가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거듭 경신하며 5000선에 바짝 다가섰다. 연초 이후 상승률은 15% 안팎으로, 글로벌 주요 증시 가운데 가장 가파르다. 하지만 개인투자자 수익률은 외국인의 절반에 그치고 있다. 여러분의 수익률은 어떤가요?
1. 수익을 봤다.
2. 손해를 봤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