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담배밭/심재억 문화부 차장

[길섶에서] 담배밭/심재억 문화부 차장

입력 2005-06-30 00:00
수정 2005-06-30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쥘부채만한 잎에 키는 간짓대보다 높아 어른도 밭고랑에 묻히면 종적이 묘연한 곳, 바로 담배밭입니다. 땡볕이 화살처럼 쏟아지는 여름, 바람 한점 들지 않는 고랑을 누비며 담뱃잎을 따는 일은 여간한 고역이 아니었고, 그때 흘린 땀만큼이나 사연도 많았지요.

열살쯤이었을까요. 고모 댁에서 저녁을 때우고 오는 길, 푸르스름한 밤하늘에는 소금을 뿌린 듯 별들이 사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 하늘을 가르는 별똥을 세며 무서운 마음 다잡고 오는 길이었는데, 그만 마을 어귀 담배밭 모퉁이에서 기함하듯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마치 물결처럼 일렁이며 담배밭 속으로 흘러드는 것이었습니다. 가로수 그늘에 선 내 눈에는 두 사람의 몸짓이 또렷하게 보였고, 한 동네 선남선녀인지라 그들이 누군지도 이내 알 수 있었습니다.

고양이처럼 그 길을 지나왔습니다. 내 발소리에 개구리 떼가 뚝, 울음을 그치자 이제는 그들이 나를 알아볼까 가슴이 쿵덕거렸습니다. 사랑도 요새처럼 내놓고 하는 세상이 아니어서 남의 사랑 눈치채는 것도 얼굴 달아오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 후, 둘은 결혼을 했는데, 더러는 그 담배밭 생각도 하며 잘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2005-06-30 3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쿠팡 가입유지 혹은 탈퇴할 것인가?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의혹 이후 진정성 있는 사과보다는 사태 축소에 급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 30~31일 국회 청문회에서 보여준 관계자들의 불성실한 태도 또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쿠팡 측은 이러한 논란에도 '탈퇴 회원은 많지 않다'고 발표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앞으로도 쿠팡 회원을 유지하실 생각입니까?
1. 유지할 계획이다.
2. 탈퇴를 고민 중이다.
3. 이미 탈퇴했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