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는 참여를 내걸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에 이어 한국 민주주의가 세 번째로 내건 기치가 참여이다.
문민정부는 군부통치의 극복을 의도했다.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민간인이 정치의 주체로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과 재벌권력의 상호 협조적 지배는 여전했다. 국민의 정부는 국가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줄 의향이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경제논리에 휘둘려 국가권력과 재벌권력의 제휴를 견제해야 할 국민권력의 강화는 지연되었다.
노무현정부의 출범은 분노한 국민의 권력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수백억원대의 불법 정치자금 관행을 뿌리뽑고자 한 풀뿌리 국민의 반발은 깨끗한 정치를 요구했다. 노무현정부는 대기업과 정당정치인, 고위관료 그리고 언론기업간의 4자 연합을 깨뜨리기 위해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를 찾아 참여를 들이밀었다.
노무현정부는 본질적으로 지방과 젊은 세대, 주변부 다수집단 그리고 의회내 소수파 간의 제휴를 등에 업고 집권한 소수파 정부이다. 탄핵 열풍으로 일시 국회 다수당이 되었다 한들 그것만으로 한국사회의 주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정부는 우세한 4자 연합의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줄곧 국민들의 참여에 기대었다. 그러나 도덕적 분노에 기초한 참여로는 세계화 시대의 지난한 국가경영에 힘이 부치는 듯 보인다.
참여정부는 상당한 정도로 실험정부의 성격을 띤다. 사실 참여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인지 아니면 그 대안인지도 불명확하다. 만약 참여가 대의를 보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의회의 권위를 존중해 주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소수파 정부인 참여정부는 의회를 우회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는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포퓰리즘으로 흘러갔다.
참여가 대의에 대한 대안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도 성공적인 참여민주주의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조차도 제대로 운용해 보지 못한 한국민 대다수는 참여의 실험보다 자유민주의 성숙이 더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참여보다는 경제자유와 시장논리가 더 지배적인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대의의 대안으로서 참여가 설 자리는 옹색해 보인다.
참여의 실험정부는 다양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정부이다. 대통령, 국정원, 검찰 등 국가권력의 힘 빼기, 수도권 중심의 엘리트 카르텔에 대한 도전, 미국 편향에서 동북아로의 관심 촉구 등 굵직한 문제제기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국가권력의 힘을 빼면서 기득권의 지배 카르텔을 완화시키려는 일대 개혁 그 자체가 단기적 성공이 어려운 실험이라는 것이다.
문제제기와 실험으로 2년 반을 보낸 참여정부에 대해 중간 논평은 자주 무능으로 회자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을 치유하려는 참여정부의 도전이 일거에 어떤 효과를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간-지역간-계층간에 20(부) 대 80(빈)으로 양극화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진전되어 나가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일국적 차원의 개혁은 거의 속수무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제와 정보통신은 세계화되어 있는데 반해 공동체의식은 여전히 국지화되어 있고, 그래서 참여의 실험을 뒷받침해 줄 국제적 연대나 세계적 수준의 합의된 처방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참여정부의 실험이 실제로 빈부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지배엘리트의 카르텔을 조정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가 국민의 참여에 의지하여 경제적 조정을 도모하는 데 그 하나의 목적이 있다고 본다면, 적어도 이념과 일부 정책에서 참여정부의 문제제기와 실험은 유용하다. 그렇다면 남은 2년여 동안 우리 모두 참여의 가능성을 찾아 서로 지혜를 모으고 힘을 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문민정부는 군부통치의 극복을 의도했다. 군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민간인이 정치의 주체로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과 재벌권력의 상호 협조적 지배는 여전했다. 국민의 정부는 국가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줄 의향이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경제논리에 휘둘려 국가권력과 재벌권력의 제휴를 견제해야 할 국민권력의 강화는 지연되었다.
노무현정부의 출범은 분노한 국민의 권력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수백억원대의 불법 정치자금 관행을 뿌리뽑고자 한 풀뿌리 국민의 반발은 깨끗한 정치를 요구했다. 노무현정부는 대기업과 정당정치인, 고위관료 그리고 언론기업간의 4자 연합을 깨뜨리기 위해서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를 찾아 참여를 들이밀었다.
노무현정부는 본질적으로 지방과 젊은 세대, 주변부 다수집단 그리고 의회내 소수파 간의 제휴를 등에 업고 집권한 소수파 정부이다. 탄핵 열풍으로 일시 국회 다수당이 되었다 한들 그것만으로 한국사회의 주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정부는 우세한 4자 연합의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줄곧 국민들의 참여에 기대었다. 그러나 도덕적 분노에 기초한 참여로는 세계화 시대의 지난한 국가경영에 힘이 부치는 듯 보인다.
참여정부는 상당한 정도로 실험정부의 성격을 띤다. 사실 참여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의 보완인지 아니면 그 대안인지도 불명확하다. 만약 참여가 대의를 보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의회의 권위를 존중해 주어야 할 터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소수파 정부인 참여정부는 의회를 우회하고자 하였고, 그 결과는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호소하는 포퓰리즘으로 흘러갔다.
참여가 대의에 대한 대안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도 성공적인 참여민주주의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의민주주의조차도 제대로 운용해 보지 못한 한국민 대다수는 참여의 실험보다 자유민주의 성숙이 더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참여보다는 경제자유와 시장논리가 더 지배적인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흐름 속에서 대의의 대안으로서 참여가 설 자리는 옹색해 보인다.
참여의 실험정부는 다양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정부이다. 대통령, 국정원, 검찰 등 국가권력의 힘 빼기, 수도권 중심의 엘리트 카르텔에 대한 도전, 미국 편향에서 동북아로의 관심 촉구 등 굵직한 문제제기가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국가권력의 힘을 빼면서 기득권의 지배 카르텔을 완화시키려는 일대 개혁 그 자체가 단기적 성공이 어려운 실험이라는 것이다.
문제제기와 실험으로 2년 반을 보낸 참여정부에 대해 중간 논평은 자주 무능으로 회자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을 치유하려는 참여정부의 도전이 일거에 어떤 효과를 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국가간-지역간-계층간에 20(부) 대 80(빈)으로 양극화가 무섭게 빠른 속도로 진전되어 나가는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일국적 차원의 개혁은 거의 속수무책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제와 정보통신은 세계화되어 있는데 반해 공동체의식은 여전히 국지화되어 있고, 그래서 참여의 실험을 뒷받침해 줄 국제적 연대나 세계적 수준의 합의된 처방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참여정부의 실험이 실제로 빈부의 양극화를 완화하고 지배엘리트의 카르텔을 조정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참여민주주의가 국민의 참여에 의지하여 경제적 조정을 도모하는 데 그 하나의 목적이 있다고 본다면, 적어도 이념과 일부 정책에서 참여정부의 문제제기와 실험은 유용하다. 그렇다면 남은 2년여 동안 우리 모두 참여의 가능성을 찾아 서로 지혜를 모으고 힘을 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2005-06-3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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