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여담] 꿈을 막는 휴대전화/박상숙 문화부 기자

[여담여담] 꿈을 막는 휴대전화/박상숙 문화부 기자

입력 2005-01-29 00:00
수정 2005-01-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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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기자도 공연 중에 휴대전화를 울린(?) 적이 있다.100명 남짓 들어찬 손바닥 만한 소극장. 가방 속에서 깊은 잠을 자던 휴대전화가 팔꿈치에 눌려 부지불식간 눈을 떴다. 코 앞의 배우들이 놀라 흠칫한다. 등 뒤에서 따가운 시선들이 쏟아졌음은 물론이다. 문 앞에서 일일이 관객들을 배웅하는 배우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보지 못하고 극장을 빠져 나왔다. 황당한 경험은 아예 휴대전화 배터리를 빼 버리는 좋은 습관을 남겼다.

요즘 객석에 앉아 있을 때 가슴이 철렁해질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가 다시 막을 올렸던 문예진흥원 대극장. 공연장 분위기는 한마디로 이기주의의 극치였다. 이날 따라 유달리 많이 터진 잔기침과 간간이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던 코고는 소리는 차라리 애교였다. 각양각색으로 울려 퍼지는 벨소리로 인해 배우들은 시선을 도둑 맞았다. 눈 앞의 볼거리를 놓쳐가며 먹을 것을 찾느라 연신 부스럭대는 객석의 소리에 목소리도 잃어버렸다.

‘즐길 권리’를 침해당한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아마 배우들은 이날 울고 싶지 않았을까. 무료로 티켓을 얻어 공짜 구경을 하러 온 일부 몰지각한 관객들이 벌인 행태라지만 정도만 달랐을 뿐 유료 관객이 바글대는 곳에도 공연장 예절에 대해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관객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묻고 싶다. 당신은 왜 공연장을 찾는가. 삶이 팍팍해질 때 사람들은 떠나고 싶다. 빡빡한 일상에서 장기 여정은 무리다. 그럴 때 사람들은 무대로의 ‘작은 여행’을 택한다. 어떤 형태의 공연이든지 현실도피와 망각의 자유를 허락하고 꿈꿀 권리를 부여한다. 주인공들은 같이 잊고 즐겨보자고 두 팔을 벌려 관객들을 맞이한다. 그 품으로 완벽하게 뛰어들지 말지는 순전히 관객에게 달렸다. 극장의 문이 닫혔다고 새로운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손아귀에 들어있는 ‘현실로 가는 문’을 완벽하게 닫아 걸 용기가 없는 자에게는 꿈꿀 자유도 없다.

박상숙 문화부 기자 alex@seoul.co.kr

2005-01-29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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