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에 얽인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유명한 고사(故事)가 있다. 직역하면 ‘갓끈을 끊은 연회’란 뜻으로, 장왕이 실수를 저지른 신하를 깊이 배려한 일화에서 연유한다.
장왕이 신하들을 불러 밤에 주연을 베풀었는데, 흥이 무르익었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졌다. 그 순간 한 신하가 장왕이 총애하는 여인을 희롱했다. 그 여인은 상대의 갓끈을 끊어 움켜쥐고는 촛불을 밝혀 범인을 잡아달라고 했다. 장왕은 그러나 촛불을 켜지 말라고 한 뒤 모두 갓끈을 끊고 술을 마시라고 엄명했다. 신하들은 모두 갓끈을 끊었고, 촛불이 켜진 후엔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었다. 훗날 장왕이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맞았을 때 왕의 여인을 희롱했던 그 신하는 목숨을 걸고 장왕을 구해주었다….
대입수능 부정행위로 교육계는 물론이고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경찰수사가 마무리되고 그제 60만 수험생들에게 성적표가 전달됐지만 여진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광주시교육청이 60개 고교의 진학부장 회의를 열어 성적표를 봉투에 담아 나눠주기로 결정했고, 일선 학교에서는 모두 그렇게 했다는 소식이다. 부정행위자로 밝혀져 성적이 무효처리된 학생 130명을 주변에서 누가 관련자인지를 모르도록 배려한 것이다.
부정행위 학생들은 봉투를 받긴 했지만 성적표가 없는 ‘빈봉투’였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봉투에는 교장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이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는 편지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심정으로, 교육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은 스승들을 보면서 ‘절영지회’를 떠올려 본다. 우리 교육에 한 줄기 빛이 살아있음도 느낀다.
한 차례의 시험이 인생을 가르다시피 하는 사회풍조 속에서, 일순간의 잘못으로 ‘빈봉투’를 받아든 학생들이 느낄 참담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적표가 없다고 ‘빈봉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봉투 안에는 성적표보다 더 소중한, 평생의 길잡이가 되어줄 스승의 가르침이 담긴 편지가 들어있지 않은가. 상처받은 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도록 애정과 아량으로 감싸안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보다 더 큰 교육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장왕이 신하들을 불러 밤에 주연을 베풀었는데, 흥이 무르익었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꺼졌다. 그 순간 한 신하가 장왕이 총애하는 여인을 희롱했다. 그 여인은 상대의 갓끈을 끊어 움켜쥐고는 촛불을 밝혀 범인을 잡아달라고 했다. 장왕은 그러나 촛불을 켜지 말라고 한 뒤 모두 갓끈을 끊고 술을 마시라고 엄명했다. 신하들은 모두 갓끈을 끊었고, 촛불이 켜진 후엔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었다. 훗날 장왕이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맞았을 때 왕의 여인을 희롱했던 그 신하는 목숨을 걸고 장왕을 구해주었다….
대입수능 부정행위로 교육계는 물론이고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경찰수사가 마무리되고 그제 60만 수험생들에게 성적표가 전달됐지만 여진은 그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광주시교육청이 60개 고교의 진학부장 회의를 열어 성적표를 봉투에 담아 나눠주기로 결정했고, 일선 학교에서는 모두 그렇게 했다는 소식이다. 부정행위자로 밝혀져 성적이 무효처리된 학생 130명을 주변에서 누가 관련자인지를 모르도록 배려한 것이다.
부정행위 학생들은 봉투를 받긴 했지만 성적표가 없는 ‘빈봉투’였다. 하지만 이들이 받은 봉투에는 교장선생님이나 담임선생님이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라.”고 격려하는 편지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심정으로, 교육적인 배려를 아끼지 않은 스승들을 보면서 ‘절영지회’를 떠올려 본다. 우리 교육에 한 줄기 빛이 살아있음도 느낀다.
한 차례의 시험이 인생을 가르다시피 하는 사회풍조 속에서, 일순간의 잘못으로 ‘빈봉투’를 받아든 학생들이 느낄 참담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적표가 없다고 ‘빈봉투’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봉투 안에는 성적표보다 더 소중한, 평생의 길잡이가 되어줄 스승의 가르침이 담긴 편지가 들어있지 않은가. 상처받은 이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다시 일어서도록 애정과 아량으로 감싸안는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보다 더 큰 교육이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04-12-1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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