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오염되지 않은 꿈/문흥술 서울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문화마당] 오염되지 않은 꿈/문흥술 서울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입력 2004-11-25 00:00
수정 2004-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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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유치원생인 듯한 어린아이 몇몇이 예쁘장하게 생긴 한 여자 애를 두고, 그 애가 공주냐 아니냐 하는 설전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다가 이들이 내린 결론은 여자 애가 공주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자 애는 자신은 공주가 맞다고, 아빠가 자기에게 늘 ‘우리 공주’라고 한다면서 울먹였다. 그러자 나머지 아이들이 공주가 아닌 이유를 말하는데,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말하기를, 비디오에서 본 공주들은 머리가 다 긴데, 그 여자 애는 머리가 짧다는 것이 아닌가.

시인 유하는 “압구정동은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이라고 했다. 컴퓨터로 상징되는 각종 정보 메커니즘이 우리네 삶의 세목을 지배하는 정보사회를 두고, 유하는 무의식의 욕망마저 통조림 찍어내듯이 획일화한다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정보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 온 종일 인터넷, 텔레비전 등과 같은 정보 메커니즘과 함께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논리에 길들여지고 있다. 잠깐 우리들 욕망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아마도 출세해서 돈 벌어 좋은 집에서 좋은 차 굴리면서 호강스럽게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드물 것이다. 물질적 가치만을 최우선시하는 이런 욕망이야말로 상품물신주의가 지배하는 정보사회에 오염된 단적인 예다.

정보사회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신격화된 상품이 모든 가치 평가의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는 상품물신주의이다. 우리 주변에 자동차와 관련된 농담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유독 소형 승용차와 관련이 있다. 가령, 소형차 운전자가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데 차가 움직이지 않아 살펴보니 타이어에 껌이 붙어 있더라는 것이나, 구부러진 길을 돌 때 차가 넘어질까 봐 운전자가 손을 땅에 짚고 돈다는 것이 그 예이다. 그냥 우스갯소리로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값싼 차를 타지 말고 비싼 차를 타야 대접을 받는다는 상품물신화의 논리가 잠복해 있다. 비싼 차와 관련된 농담이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될 수 있으면 값비싼 상품을 소비하도록 유혹하고, 그런 상품을 소유할수록 뭔가 품위 있는 듯이 보이는 시대가 오늘날이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풍조를 조장하는 전위 부대가 정보 메커니즘이다.

정보사회의 논리에 함몰되기 이전의 본래적 욕망을 두고 ‘영도(零度)의 꿈 혹은 욕망’이라 한다. 오염 제로의 욕망, 그것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물질과 정신, 육체와 영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에 뿌리를 드리우고 있다. 물신화되고 비인간화된 정보사회의 입장에서 볼 때,‘영도의 욕망’은 자신의 체제를 일거에 전복시킬 수 있는 강력한 부비트랩과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음흉한 정보사회는 그런 욕망을 철저히 억압하고 대신 자신의 논리에 충실하게 복종할 수 있도록 우리들 욕망을 교활하게 조작하고 통제한다.

공주는 무조건 머리가 길어야 한다고 믿는 어린 세대가 계속해서 정보 메커니즘의 논리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성장해 간다고 상상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라나는 세대에게 밝고 건강한 꿈을 심어주는 것은 기성세대에게 주어진 필연적 의무이다. 기성세대가 오염되지 않은 문화를 늘 가까이 하고 바른 생각을 하면서 ‘영도의 욕망’을 가질 때, 자라나는 세대도 그것을 본받을 것이다. 훗날 우리의 귀엽고 소중한 아이들이 ‘체제가 만들어낸 욕망의 통조림 공장’의 한 생산품으로 전락하고 말 것인지, 아니면 진정 인간다운 존재로 고귀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의 여부는 온전히 기성세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2004-11-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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