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위원 칼럼] ‘화장실 정상회담’서 배워라/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자문위원 칼럼] ‘화장실 정상회담’서 배워라/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입력 2004-11-16 00:00
수정 2004-11-1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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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은 지난 11일자 주말매거진 We의 ‘세상에 이런 일이’란 코너에서 미국, 일본 등 19개국 대표단이 베이징에서 각국의 화장실 문화와 관리방법에 대해 정상회의를 연다고 보도했다.

필자는 일주일전쯤 미국 마이애미헤럴드지에서 흥미로운 ‘화장실 정상회의(www.worldtoilet.org)’에 대한 풍자칼럼을 읽었다. 그러고 나서 국내신문 가운데 어느 곳에서 가장 먼저 이 ‘재미있는 이벤트’를 다루는지 살폈다. 수도권 10대 일간지 중에는 서울신문이 유일하게 이 기사를 보도했으며, 그런 점에서 뉴스선택의 안목을 높이 평가한다.

화장실 하면 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쯤 있을 법하다. 필자에겐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이 떠오르곤 한다.IMF 경제체제 속에서 대학의 구조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분이 바로 김 총장이었다. 그가 취임 후 벌인 최초의 사업이 바로 화장실을 개조하는 일이었다. 수리가 어렵거나 관리가 되지 않는 화장실은 모두 없애고 새로운 모습의 화장실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화장실 개조에서 시작된 고려대의 모습은 그 후 몰라보게 달라졌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의 근대화과정에서 사회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람으로 우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는다.1970년대 중학교를 다니던 우리는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사회변화의 중요성을 은연중에 배웠다. 종례시간에 국민교육헌장을 외우지 못하는 사람은 여지없이 ‘냄새나고 지저분한’ 화장실을 청소해야만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토의 맥인 경부고속도로를 내고 초가집을 개량한옥으로 바꾸어 나갔다. 하지만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는 데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만큼 화장실 문화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박 전 대통령은 근대화 운동을 지붕을 바꾸는 데서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국민의식을 개혁하려고 했다.

세계 화장실 정상회담이 왜 베이징에서 열릴까.13억 중국인들의 절대다수가 지금 한국의 1960∼70년대와 같은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한다. 우리가 오래 전에 개량지붕이 절실했듯이, 중국은 지금 그만큼 수세식 화장실이 필요하다.“화장실 개조는 중국인의 삶의 변화요, 의식의 변화”라는 어느 중국 전문가의 말이 새롭게 들린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그 많은 회담을 두고 굳이 ‘화장실 정상회담’을 유치한 데는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리더들은 사고방식의 변화 없이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없고, 발상의 전환 없이 사회개혁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은 아닐까.

한국의 집권 여당도 많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4대 개혁입법’에 매달려 시간만 소비할 게 아니다. 차라리 이 기회에 화장실 정상회담에 참석해 사회개선에 필요한 교훈을 배워 오는 게 어떨까. 거기서도 노하우를 얻지 못한다면, 전남 순천 옆에 있는 조계산 선암사의 해우소를 찾아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

정호승의 시에서처럼,“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그리고 그 곳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왜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사회개혁이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실컷 울어보기 바란다. 그러다 보면 카타르시스가 생겨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책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물론 삶의 질을 높인다고 경치가 좋고 국내에서 가장 통풍이 잘된다는 선암사 해우소까지 없애려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 개혁에도 순서가 있다. 민감한 사회이슈를 유연하게 다루어 중산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여당으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심재철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2004-11-1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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