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헌재 정치’ 명암/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시론] ‘헌재 정치’ 명암/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입력 2004-11-03 00:00
수정 2004-1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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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명예논설위원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을 내렸다. 서울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 한반도의 수도로 받아들여져 오고 있기 때문에, 수도 이전은 절차적으로 헌법개정이나 국민투표를 통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이다.

이번의 위헌 판결 역시 대통령 탄핵 판결과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는 의회만능주의에 대한 견제이자 조정에 해당한다. 법을 만들고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서는 국회의 다수결 못지않게 일반 국민들의 상식과 정서 그리고 전통과 관습을 고려하면서 적실성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는 게 헌재의 위헌판결 내용이다.

문제는 앞으로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국보법이나 사학개정법처럼 그 법을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될 때마다 헌재가 제3자적 심판관 내지는 조정자 역할을 맡도록 할 것인가이다. 물론 국회가 상호 타협과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경우 누군가가 이러한 대치정국을 해소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의 ‘헌재정치’는 기실 여야 정치권의 정치력 부재로 인해 생긴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향후 국회의 제정신 차리기와 함께 자주 정치적 조정자 역할을 맡게 될 헌재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여론의 감시가 절실히 요청되기도 한다.

헌재는 법치와 사회안정을 중시해야 하는 속성상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가능성이 크고 동시에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기능과 역할에서 보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헌재의 보수성과 정치성이 교차하면서 탄핵이나 신행정수도 문제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은 헌재가 다분히 여론에 편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행정수도를 반대하는 여론을 법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 관습헌법을 동원할 정도로 헌재는 또 하나의 대의민주주의를 대변하고 있다.

관습헌법의 위상과 타당성을 넘어서서 헌재가 관습헌법을 동원해서라도 정당화시키고 싶은 것은 국민들의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선출되지 않은 헌법기관이 대의민주주의적 역할을 맡는 게 정당한가는 여전히 쟁점으로 남는다.

이번 헌재의 판결은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부당함과 의회만능주의를 견제한다는 유용성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뿐만 아니라 비선출직인 사법부도 국민들을 대변할 수 있다는 데서 선거만능주의에 대한 조정이기도 하다. 다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헌재의 해석이 조정이 아니라 판결에 치우친다면, 그 순간 헌재는 헌법에 군림하는 독불장군이 되어 버린다는 데에 아쉬움이 크다.

정부와 여당의 실책은 자명해 진다. 왜냐하면 신행정수도 건설을 두고 찬반이 비등했다가 위헌 심판 시점에서는 반대가 찬성보다 크게 앞서는 걸로 나타났는데, 이는 신행정수도특별법이 통과되어 있고 또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면 되는 걸로 생각했던 오만 때문이었다. 신행정수도를 둘러싸고 논쟁이 불거질수록 다시 한 번 대통령 선거 치르는 심정으로 국민들을 상대로 설득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했다.

차제에 신행정수도 건설이 노무현정부의 모든 것인 양하는 고집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라는 노무현정부의 기치에 비추어서 지역균형이든 동북아중심이든 그러한 정책과제가 민주주의의 심화와 확대에 바탕을 두고 이를 통해 추진해야 하는 것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면, 이번 헌재의 판결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심화로 나아가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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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길현 제주대 정치학 교수
2004-11-0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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