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사부곡(思婦曲)/손성진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부곡(思婦曲)/손성진 논설위원

입력 2004-11-02 00:00
수정 2004-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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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蓮)잎새 맑은 이슬에 씻긴 발아/지금은 진흙밭 삭은 잎새 다 된 발아!/말굽쇠 같은 발, 무쇠솥 같은 발아!/잠든 네 발바닥을 핥으며 이 밤은/캄캄한 뻘밭을 내가 헤매며 운다>백혈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아내의 발을 보고 쓴 송수권 시인의 ‘아내의 맨발-蓮葉(연엽)에게’라는 시다. 연엽은 아내의 이름이다. 나를 키운 건 똥장군을 짊어지고 수박밭을 일군 아내의 맨발이었다고 시인은 애통해 했다.

가난을 버텨내며 뒷바라지해준 고마움 때문일까. 조강지처를 향한 시인들의 마음은 애절하기 그지없다.<조금 전까지 거기 있었는데/어디로 갔나,/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넙치지지미 맴싸한 냄새가 코를 맴싸하게 하는데/어디로 갔나,/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김춘수 ‘강우’)먼저 세상을 뜬 아내의 빈 자리를 견디지 못하는 팔순 시인의 심정이 구구절절 담겼다.<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내 아내’라는 시처럼 미당 서정주는 아내가 세상을 등진 지 석달을 넘기지 못하고 아내를 만나러 떠났다.

60년을 해로한 아내가 사망하자 식음을 전폐하고 닷새만에 뒤따라간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씨의 사부곡(思婦曲)도 눈물겹다.15년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온 그를 극진하게 보살펴온 아내가 없이는 노시인은 단 하루도 살 수 없었을 게다.

당나라 시인 원진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觀于海者難爲水’(바다의 장관을 본 사람은 강물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라고 읊었다. 아내를 본 다음부터는 다른 여자를 눈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로 섬기고 위하는 참된 부부애를 찾기가 쉽지 않은 요즘이다. 평생의 동반자로 아껴주기는커녕 다투고, 구박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인연을 끊는다. 이혼율이 세계 최고에 이를 정도로 애정이 식어버린 우리 부부들의 모습은 노시인들의 사랑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당신은 오직 가정의 안녕만을 위해 헌신하셨으며 홀로 흘린 눈물은 가족의 웃음꽃이 되었소.’몇년전 ‘30여년간 가정에 헌신한 공로’로 아내에게 감사패를 전달한 대학병원 직원의 기사가 웃음을 짓게 했다. 우리는 아내의 고마움을 너무 모른다. 곁에 있을 때 아내를 사랑하자.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2004-11-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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