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때로는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을 재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을 통해 우리의 현재 위치와 모습이 더욱 잘 이해될 수가 있는 것이다. 외국인이 보는 한국에 대한, 그들로서는 상식으로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 어쩌면 흥미로운 몇 가지 모습이 있다.
첫째,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이 이라크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또는 반부시적)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은 물론, 미국과 동맹관계가 없는 국가들보다 50여년간 혈맹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이 미국에 대해 더 비판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외국인, 특히 미국인들은 혼란스러워한다. 한국 국민이 그동안 서구 선진국가 국민들보다 더 자유주의적이거나 반전적(反戰的)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한국안보에 대해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가치가 여전히 중요한데 정작 그 파트너인 미국의 전쟁에 대한 한국인들의 냉혹한 평가에 외국인들은 자못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것을 단지 ‘동맹의 노후화’의 결과로만 보기 어려운 점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둘째,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한국인들이 비교적 태평하다는 사실 또한 외국인들에게는 놀라움거리다. 서울을 다녀가는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태도와 인식에 위기감이나 절박감이 전혀 없다는 데서 일단 놀란다.10년 위기의 일상화라기보다 어쩌면 북한 핵은 애초부터 위기가 아닌 듯하다는 인상을 그들은 우리에게서 받는다. 이러한 위협인식 부재의 심리를 설명할 마땅한 이론도 없다. 특히 외국 전문가들은 북한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제3자적 태도를 비판한다. 또한 미국이 북한보다 더 한국안보에 위협적이라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에는 거의 ‘경이’에 가까운 관심을 표명한다.
셋째,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한국 내의 반응에 관한 것이다. 미국 의회가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일부 여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보다 북의 정권안보를 통한 한반도 안정화를 더욱 중요시하는 그들의 논리와 태도에 그들이 과거에 소위 민주화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면 외국인들은 더욱 놀란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의 근본은 인권이라는 매우 기본적 이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이다. 연간 수출액이 2000억달러를 넘는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여전히 세계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커다란 수수께끼다. 경제세계화는 뉴욕타임스 기자 프리드먼이 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언급한 금융, 자본, 기술의 혁명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이 지금과 같은 규모의 수출을 이룩한 국가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정치권에서 다반사로 뱉어지는 반시장적 언급과 경직될 대로 경직되어버린 노사문화, 경제자유화와는 거리가 먼 각종 규제들을 보면서 외국인들이 느끼는 수수께끼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다섯째, 우리도 깜짝깜짝 놀라지만 한국의 국내정치 소용돌이는 외국인들로서는 거의 이해의 수준을 벗어난다. 한국을 잘 아는 외국 전문가들도 며칠만 한국 뉴스를 놓치면 앞뒤가 이해되질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들은 탄핵과 헌법의 판단을 구하는 정치권의 극단적 곡예가 어떻게 스스럼없이 일어나는지,50∼60년이 지난 과거사가 어째서 지금 와서 한국정치의 첨예한 갈등의 씨앗이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은 이해하기 힘든 나라라는 인식이 깊어질수록 한국과 세계와의 괴리는 커져간다. 우리가 자신의 논리로만 무장하여 세계를 편의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자기합리화에 몰두할 때 한국은 점점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으로 전락한다.
외국의 친한파 지인(知人)들은 이제 한국을 심각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기우라고만 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징후(徵候)이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첫째,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 한국인이 이라크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반미적(또는 반부시적)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나 독일은 물론, 미국과 동맹관계가 없는 국가들보다 50여년간 혈맹관계를 유지해온 한국이 미국에 대해 더 비판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외국인, 특히 미국인들은 혼란스러워한다. 한국 국민이 그동안 서구 선진국가 국민들보다 더 자유주의적이거나 반전적(反戰的)이었다는 증거는 없다. 한국안보에 대해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가치가 여전히 중요한데 정작 그 파트너인 미국의 전쟁에 대한 한국인들의 냉혹한 평가에 외국인들은 자못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것을 단지 ‘동맹의 노후화’의 결과로만 보기 어려운 점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둘째,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한국인들이 비교적 태평하다는 사실 또한 외국인들에게는 놀라움거리다. 서울을 다녀가는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태도와 인식에 위기감이나 절박감이 전혀 없다는 데서 일단 놀란다.10년 위기의 일상화라기보다 어쩌면 북한 핵은 애초부터 위기가 아닌 듯하다는 인상을 그들은 우리에게서 받는다. 이러한 위협인식 부재의 심리를 설명할 마땅한 이론도 없다. 특히 외국 전문가들은 북한핵문제에 대한 한국의 제3자적 태도를 비판한다. 또한 미국이 북한보다 더 한국안보에 위협적이라는 일부 여론조사 결과에는 거의 ‘경이’에 가까운 관심을 표명한다.
셋째,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한국 내의 반응에 관한 것이다. 미국 의회가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킨 것에 대해 일부 여당 의원들이 공개적으로 미국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북한 주민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보다 북의 정권안보를 통한 한반도 안정화를 더욱 중요시하는 그들의 논리와 태도에 그들이 과거에 소위 민주화 세력이었다는 사실을 설명하면 외국인들은 더욱 놀란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의 근본은 인권이라는 매우 기본적 이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넷째, 한국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태도이다. 연간 수출액이 2000억달러를 넘는 세계 1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여전히 세계화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은 외국인에게는 커다란 수수께끼다. 경제세계화는 뉴욕타임스 기자 프리드먼이 쓴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언급한 금융, 자본, 기술의 혁명을 요구하는 것인데 이런 기준에서 보면 한국이 지금과 같은 규모의 수출을 이룩한 국가라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정치권에서 다반사로 뱉어지는 반시장적 언급과 경직될 대로 경직되어버린 노사문화, 경제자유화와는 거리가 먼 각종 규제들을 보면서 외국인들이 느끼는 수수께끼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다섯째, 우리도 깜짝깜짝 놀라지만 한국의 국내정치 소용돌이는 외국인들로서는 거의 이해의 수준을 벗어난다. 한국을 잘 아는 외국 전문가들도 며칠만 한국 뉴스를 놓치면 앞뒤가 이해되질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들은 탄핵과 헌법의 판단을 구하는 정치권의 극단적 곡예가 어떻게 스스럼없이 일어나는지,50∼60년이 지난 과거사가 어째서 지금 와서 한국정치의 첨예한 갈등의 씨앗이 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은 이해하기 힘든 나라라는 인식이 깊어질수록 한국과 세계와의 괴리는 커져간다. 우리가 자신의 논리로만 무장하여 세계를 편의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자기합리화에 몰두할 때 한국은 점점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으로 전락한다.
외국의 친한파 지인(知人)들은 이제 한국을 심각하게 걱정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하는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기우라고만 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징후(徵候)이다.
현인택 고려대 교수·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
2004-10-27 2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