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란 것은 히타치라는 기업이 기초연구를 수행한다는 것과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기업에 있더라도 필요한 연구시설의 구축을 지원해 주는 일본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다.
난주 도쿄 북서쪽의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히타치 기초연구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이 연구소는 일본 대표기업의 하나인 히타치의 차세대 이후 사업품목을 개발하고 첨단기술개발 연구를 수행한다고 한다.한마디로 히타치의 미래를 짊어진 연구소이다.십여만평의 언덕에 자리를 잡은 4층 건물의 겉모습은 여느 연구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연구소 홍보영화의 절반이 한 연구자의 소개로 구성되어 있고,그 연구자를 위한 실험시설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것이 무척 의외였다.한국의 정부출연연구소나 기업연구소 어디를 가도 개인 연구자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곳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일본기업이 미국기업과 엎치락뒤치락 경쟁할 수 있는 원천이 무엇인가 짐작케 한 부분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일본 손님만 오면 인사하지 못해 안달을 하던 미국인들을 보고 놀랐던 것이 1980년대 중반이다.‘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거리낌없이 얘기하는 일본이 얄미웠고,일본을 배우자고 외치던 미국에 왠지 동정이 갔던 기억이 난다.그런데 1990년대 초반 미국 출장을 갔을 때 더 이상 일본을 배울 게 없다고 의기양양해 하던 미국사람들의 오만이 무척 눈에 거슬렸던 생각이 난다.
지금까지는 1990년대 미국기업의 절치부심이 일본기업을 압도해온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지난주 일본 출장에서 왠지 또 다른 역전의 서곡이 들리는 것 같았다.
외환위기를 겪고 피눈물 나는 경제구조조정을 한다고 해온 우리는 왜 이들의 게임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우리 경제의 문제에 대한 진단도 가지가지이다.혹자는 ‘1만달러 함정’이라고 하고,혹자는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성급함을,혹자는 정치적 통합능력의 약화를 들고 있다.모두 틀린 말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뛰어난 과학자를 찾기 어렵고 키우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국가발전에 필요한 전세계의 고급인력을 얻어왔다.그것이 과학부문의 노벨상을 미국이 휩쓸고 있는 이유이며 미국이 경쟁력을 유지해온 비결이다.
비록 문화와 언어의 핸디캡을 안고 있지만 일본도 과학기술 부문의 노벨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시켰다.순혈주의를 고집해온 일본임을 감안한다면 미국과 견줄 수 있는 실적이다.특히 최근 3년간 연속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새로운 역전을 위한 일본의 준비가 견실함을 보여준다.
히타치기초연구소가 내세운 도노무라박사는 노벨상 순번을 기다리는 후보였기에 자랑스러웠던 것이다.더욱 놀란 것은 히타치라는 기업이 기초연구를 수행한다는 것과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기업에 있더라도 필요한 연구시설의 구축을 지원해 주는 일본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다.
히타치기초연구소가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분야는 우리 정부가 최근 시작하고 있는 신기술 분야로 양자계측,뇌과학응용,나노기술 등 세 분야이다.양자계측 연구는 새로운 계측시스템과 소재 및 디바이스개발에 응용되고,뇌과학응용은 인간의 질병치료에 응용될 수 있다.나노기술 개발도 새로운 고기능 소재의 개발과 고온 초전도체 개발에 응용될 수 있다.언제 제품화가 되고 이익을 실현할지 모르는 분야에 세계 최고의 연구자를 고용하여 투자할 수 있는 일본기업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최고의 권위가 인정된 연구자 대신에 역대 기관장의 인물사진이 걸려있는 우리의 연구기관이나 대학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국가의 경쟁력이 과학기술경쟁력에 좌우되는 시대에는 최고의 인력이 필요하다.최고의 권위자를 키우는 정책과 또 그를 인정해 주는 연구풍토가 없다면 더 이상 우리의 미래는 없다.정부연구개발사업의 선정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데 급급해하면 최고의 권위자는 탄생시킬 수 없다.최고의 전문가가 있는 곳에 연구비가 따라가야 하며,그 연구에 샴페인을 터뜨리는 조급함으로 결과를 채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난주 도쿄 북서쪽의 사이타마현에 위치한 히타치 기초연구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이 연구소는 일본 대표기업의 하나인 히타치의 차세대 이후 사업품목을 개발하고 첨단기술개발 연구를 수행한다고 한다.한마디로 히타치의 미래를 짊어진 연구소이다.십여만평의 언덕에 자리를 잡은 4층 건물의 겉모습은 여느 연구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연구소 홍보영화의 절반이 한 연구자의 소개로 구성되어 있고,그 연구자를 위한 실험시설을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것이 무척 의외였다.한국의 정부출연연구소나 기업연구소 어디를 가도 개인 연구자를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곳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일본기업이 미국기업과 엎치락뒤치락 경쟁할 수 있는 원천이 무엇인가 짐작케 한 부분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일본 손님만 오면 인사하지 못해 안달을 하던 미국인들을 보고 놀랐던 것이 1980년대 중반이다.‘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거리낌없이 얘기하는 일본이 얄미웠고,일본을 배우자고 외치던 미국에 왠지 동정이 갔던 기억이 난다.그런데 1990년대 초반 미국 출장을 갔을 때 더 이상 일본을 배울 게 없다고 의기양양해 하던 미국사람들의 오만이 무척 눈에 거슬렸던 생각이 난다.
지금까지는 1990년대 미국기업의 절치부심이 일본기업을 압도해온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지난주 일본 출장에서 왠지 또 다른 역전의 서곡이 들리는 것 같았다.
외환위기를 겪고 피눈물 나는 경제구조조정을 한다고 해온 우리는 왜 이들의 게임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가.우리 경제의 문제에 대한 진단도 가지가지이다.혹자는 ‘1만달러 함정’이라고 하고,혹자는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성급함을,혹자는 정치적 통합능력의 약화를 들고 있다.모두 틀린 말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뛰어난 과학자를 찾기 어렵고 키우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적극적인 이민정책으로 국가발전에 필요한 전세계의 고급인력을 얻어왔다.그것이 과학부문의 노벨상을 미국이 휩쓸고 있는 이유이며 미국이 경쟁력을 유지해온 비결이다.
비록 문화와 언어의 핸디캡을 안고 있지만 일본도 과학기술 부문의 노벨상 수상자를 9명이나 배출시켰다.순혈주의를 고집해온 일본임을 감안한다면 미국과 견줄 수 있는 실적이다.특히 최근 3년간 연속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새로운 역전을 위한 일본의 준비가 견실함을 보여준다.
히타치기초연구소가 내세운 도노무라박사는 노벨상 순번을 기다리는 후보였기에 자랑스러웠던 것이다.더욱 놀란 것은 히타치라는 기업이 기초연구를 수행한다는 것과 세계 최고의 권위자가 기업에 있더라도 필요한 연구시설의 구축을 지원해 주는 일본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다.
히타치기초연구소가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분야는 우리 정부가 최근 시작하고 있는 신기술 분야로 양자계측,뇌과학응용,나노기술 등 세 분야이다.양자계측 연구는 새로운 계측시스템과 소재 및 디바이스개발에 응용되고,뇌과학응용은 인간의 질병치료에 응용될 수 있다.나노기술 개발도 새로운 고기능 소재의 개발과 고온 초전도체 개발에 응용될 수 있다.언제 제품화가 되고 이익을 실현할지 모르는 분야에 세계 최고의 연구자를 고용하여 투자할 수 있는 일본기업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최고의 권위가 인정된 연구자 대신에 역대 기관장의 인물사진이 걸려있는 우리의 연구기관이나 대학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국가의 경쟁력이 과학기술경쟁력에 좌우되는 시대에는 최고의 인력이 필요하다.최고의 권위자를 키우는 정책과 또 그를 인정해 주는 연구풍토가 없다면 더 이상 우리의 미래는 없다.정부연구개발사업의 선정에서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데 급급해하면 최고의 권위자는 탄생시킬 수 없다.최고의 전문가가 있는 곳에 연구비가 따라가야 하며,그 연구에 샴페인을 터뜨리는 조급함으로 결과를 채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종국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2004-03-25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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