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에] 산 아래로/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토요일 아침에] 산 아래로/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입력 2004-02-21 00:00
수정 2004-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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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홍콩에 본부를 두고 있는 기독교 관련 국제기구의 재정담당 책임자의 방문을 받았다.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국제활동을 위한 모금 문제로 옮아갔다.그 분의 말인즉 자기의 출신국인 태국의 조류독감은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데 한국에 와서 보니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그런데 태국에 없는 엄청난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면서 양계협회와 오리협회가 발표한 조류독감 감염자에 대한 20억원 보험 보상금 이야기를 꺼낸다.솔직히 말해서 모금도 잘 안되고 있는데 서울에서 닭고기를 먹고 독감에 걸려 20억원을 타면 좋겠다고 한다.그 돈이면 자기가 봉직하고 있는 기구의 재정에 커다란 공헌이 되겠다면서 껄걸 웃는 모습이 너무도 진지하고 애틋해 보였다.

보상금 이야기가 오죽하면 세인의 관심을 끌까.조류를 먹고 사는 사람이 피해자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크게 보면 조류독감은 인간의 환경 파괴의 귀결이고 조류도 인간도 동시에 피해자인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으면 좋겠다.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의 손길이 닿지 않는 대자연 속의 조류에는 아직은 독감이 만연한다는 보고가 없으니 말이다.인간 세계의 책임은 환경 세계에 대한 공생적 책임을 수반한다.창조의 신비만 말할 게 아니라 창조 세계 전체에 대한 책임을 말해야 할 시점이다.

유명한 화가인 이탈리아의 라파엘은 15세기 말엽에서 16세기 초엽까지 살았다.37번째 생일날 운명했다.사망하기 3년전 바티칸 교황청으로부터 신약성서에 나온 예수의 ‘산상변모’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아 달라는 부탁을 받아 완성하고는 생애를 마쳤다.장례식은 교황 주재로 엄숙하게 치러졌다.

산에 오른 예수는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 세 제자가 보는 앞에서 밝은 빛과 흰 옷입은 사람으로 변모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성인으로 섬기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산 중턱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수제자 베드로는 산에 궁궐같은 초막을 세 채 지어 예수,모세,엘리야와 함께 영생을 누리자고 제안한다.얼마다 황홀했으면 그랬을까.그러나 예수는 산 아래에서 신음하는 군상들의 세계로 내려가자고 타이른다.산 아래에는 귀신들린 아이와 애통을 씹는 그의 아버지,입에 풀칠하며 겨우 살아가는 불쌍한 군중,하산을 기다리는 다른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산 중턱의 제자들은 상승하려 한다.꿈을 보았고 신비스러운 ‘저 높은 곳’의 실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하지만 높은 곳의 세분은 언제 하산하여 인간세계,환경세계의 구원을 어떤 방식으로 이룰지 황홀경에서 대담하고 있었다.

예수는 하산했다.군중 속에 몸을 던졌다.그리고 세상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 죽음을 자초한다.하지만 부활의 몸으로 등장한다.산상의 황홀경을 ‘이 낮은 곳에서’ 실재화한 셈이다.

인간의 상승욕구는 공통적 특성이다.오늘날 부패사슬에 연루된 정치와 사회 지도층은 하산하지 못한 채 권력과 부의 황홀경에 빠져 상승욕구만 채우다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고 제집도 아닌 교도소에서 전혀 다른 하산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지도자는 산 위의 꿈을 산 아래의 백성에게 심어주고 실현시키는데 헌신할 때에야 행복할 수 있다.산 아래에서 백성과 희로애락을 몸으로 나누면서 가슴으로 껴안는 행복 말이다.인간세계와 창조세계의 구원을 선포하는 종교도 빨리 하산해야 한다.꿈과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자진하여 내려오지 않으면 결국에는 버림받은 모습으로 나락에 떨어진다.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2004-02-21 4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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