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이어 본예산 놓고 여야 충돌 가능성…세법·노동개혁법 등 입법 불확실성↑
성장 잠재력 하락과 경기 둔화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한국 경제가 정치 리스크 확대라는 예기치 못한 변수에 표류하고 있다.올해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에 무려 한 달 이상이 소요되면서 일자리 창출과 구조조정 지원이라는 당초 목표했던 성과를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졌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이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앞으로 더 잦아질 것이라는데 있다.
내년 본예산과 세법개정안은 물론, 노동개혁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경제정책과 법안이 정치권 힘겨루기에 지연되거나 무산될 경우 민생경제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 경기 악화에도 추경 외면하고 정쟁…“국민만 피해”
지난 4월 총선 결과 국회가 여소야대와 3당 체제로 재편돼 어느 한쪽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 상황이 펼쳐지면서 불똥은 경제정책으로 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추경 처리 지연이다.
정부는 조선 등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마저 현실화되자 긴급히 추경 편성에 돌입했다.
내년 본예산 편성 작업과 겹친 와중에서도 일자리 및 구조조정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11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서둘러 편성, 지난 7월 26일 국회 제출했다.
정부는 당초 8월 12일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안이 통과되기를 기대했으나 누리과정 예산 논란과 서별관회의 청문회 증인 채택 문제가 불거지면서 처리가 지연됐다.
지난 1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추경안을 확정해 늦게나마 처리되는듯 했지만 이번에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 내용을 두고 여당이 강하게 반발, 의사일정을 거부하면서 무산됐다.
결국 올해 추경안은 지난 2일 오후 본회의를 통과, 국회 제출 38일만에 처리됐다.
2013년 추경안은 국회에서 19일 만에, 지난해 추경안은 18일 만에 처리된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이 걸린 셈이다.
추경안이 대폭 지연되면서 조선업 밀집지역의 실업자와 지역 자영업자, 청년 실업층의 어려움은 커졌고 산업 구조조정에도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추경 처리가 예상보다 지연되자 “조선업계, 중소기업, 영세상인, 근로자와 청년 등 국민께 송구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추경안은 국회 문턱을 넘었지만 누리과정과 관련한 이견이 여전해 본예산 처리 과정에서 이같은 다툼이 재현될 것이라는데 있다.
정부와 여당은 2017년도 예산안에서 누리과정 논란의 대안으로 지방교육정책특별회계를 신설하는 대안을 내놓았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들어가던 교육세를 분리해 누리과정 등 특정 용도로만 사용토록 해 재원 부족 우려를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야당은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고 일축하고 중앙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으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본예산 심의 과정에서 또다시 여야 간 충돌이 예상된다.
이 경우 400조원을 돌파한 내년 예산안에 대한 심사가 뒷전으로 미뤄져 경제활력 제고와 미래성장동력 확충, 민생안정이라는 당초 목표가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 세법개편·노동법·서비스법에도 높고 높은 ‘국회의 벽’
추경과 내년 예산안은 시작일 뿐이다.
정부가 올해 정기 국회 통과를 요구하는 세법개정안,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비스법) 등 입법 로드맵에도 불확실성이 커지는 모습이다.
정부는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2019년까지 연장하고 근로장려금 지급액 인상, 둘째 아이부터 출산 시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골자로 하는 내년 세제개편안을 올해 정기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그러나 세제개편안이 정부 원안대로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을 인상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고 대기업과 부자 증세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가 부진한 상황에서 기업활동을 위축할 수 있는 법인세 인상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소득세 역시 지난 2011년 최고세율을 한 차례 인상한 바 있어 추가 인상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야당 입장이 강경한 데다 야당과 야당 출신 국회의장이 법인세나 고소득층의 소득세 인상을 밀어붙여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정·청이 이달 정기 국회에서 필수 처리 법안으로 꼽은 노동개혁 4법, 서비스법의 국회 통과 전망도 어둡다.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를 유연화하고 비정규직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파견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개정안 등 노동개혁 4법을 손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당과 노동계는 쉬운 해고를 양산할 수 있다며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이미 노동개혁법은 정부와 여당이 드라이브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폐기된 전례가 있다.
여소야대로 짜여진 20대 국회로 넘어오면서 노동개혁 법안의 앞날은 한층 험난해진 모양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부는 국회 논의 상황을 주시하고 국회를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서비스법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비스법은 18대 국회 때인 2011년 12월 처음으로 발의됐지만 의료 민영화 논란 때문에 5년이 다 돼가도록 국회에 묶여 있다.
서비스산업 연구·개발(R&D)에 세제 등을 지원하고 창업·해외 진출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해 서비스업을 선진국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지만 야당은 서비스산업의 규정 범위를 의료·보건분야로 확대해 관련 규제가 완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공적 성격이 강한 의료산업이 무분별한 민영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서비스법이 통과되면 서비스산업 발전에 대한 컨트롤타워가 생기고 의료·교육·관광 등 각계 전문가 의견을 반영해 깊이 있는 서비스산업 발전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기재부 관계자는 “경제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유일호 부총리 등을 필두로 야당 의원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