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엘리엇 나올텐데”…경영 보호장치 도입론 ‘고개’

“제2 엘리엇 나올텐데”…경영 보호장치 도입론 ‘고개’

입력 2015-07-06 15:07
업데이트 2015-07-0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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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투기자본 공격에 취약…정부 “필요한 부분 검토”

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삼성물산이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가운데 국제 투기자본의 공세에 맞설 경영권 보호 수단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경제가 성장하고 금융시장 개방이 확대된 만큼 국제 투기자본의 경영권 공격에 흔들리지 않고 기업들이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의 소수의 재벌 일가가 그룹 지배권을 행사하는 한국적 현실 속에서 일반 주주의 권익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 한국, 투기자본 공격에 사실상 ‘무방비’…”방어수단 도입해야”

”창이 있으면 방패도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요즘 엘리엇 사태 이후 재계를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하소연이다.

기업을 뺏으려고 적대적 세력이 공격의 칼날을 들이대는데도 기존 대주주나 경영진이 활용할 마땅한 방어장치가 없는 한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해외 주요 선진국가들은 포이즌 필(신주인수선택권), 차등의결권 제도 등을 통해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제도를 도입했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제도가 없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이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지분을 살 수 있도록 권리를 주는 제도다. 미국에서 1980년대 초에 등장했으며 이미 미국, 일본, 프랑스, 캐나다 등 선진자본시장에 널리 보급됐다.

다른 경영권 보호장치로는 차등의결권 주식이 있다. 이는 주식 1주에 복수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구글이 대표적인 도입 사례로 꼽힌다. 구글은 2004년 상장시 1주당 1개 의결권이 있는 Class A 주식과 1주당 10개의 의결권을 인정하는 Class B 주식을 발행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는 1994년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 대부분의 회원국에서도 차등의결권제가 운용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명시적으로 복수의결권 주식을 인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기업들이 공격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려면 장내 지분매입이나 우호세력에 자사주를 매각하는 등의 방법 외엔 뚜렷한 대응책이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김수연 연구원은 6일 “최근 엘리엇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적대적 M&A에 대한 국내 기업의 방어수단이 미흡해 기업이 상장을 기피하고 있다”며 “국제표준에 상응하도록 국내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을 마련해주는 것이 정책적 견지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제2 엘리엇’ 우려에도 대주주 전횡 제한법 속속 발의

제2의 엘리엇 사태를 막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도 국회에서는 대주주의 지배권 남용을 막는 법안들이 속속 제출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다중대표소송제와 집중투표제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들이 다수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 중 모회사 주식의 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다중대표소송제는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발의됐다. 하지만 자칫하면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최근에는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매각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등 야당 국회의원 10명이 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상장사가 자사주를 매각하려면 원칙적으로 미리 소각을 하거나 각 주주가 이미 소유하는 주식 수에 비례해 배분토록 하는 게 골자다. 재계는 “소액주주가 혜택을 보는 게 아니라 투기자본만 악용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나마 박영선 의원 등 새정치연합 소속 의원 10여명이 국내 주요 기업들을 외국인투자가의 적대적 M&A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외국인 투자촉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엘리엇 등이 삼성 계열사의 지분확보에 나서는 상황에서 외국계 펀드의 경영권 간섭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된다.

◇ 정부 “경영권 방어수단 필요한 부분 검토”…”주주권익 제고 선행돼야”

엘리엇 사태를 계기로 한때 규제 완화 차원에서 일부 경영권 방어장치를 도입하려 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정부는 조심스레 재검토에 나섰다.

법무부는 2009년에 투기적이고 가치파괴적인 ‘먹튀형’ M&A로부터 기업과 주주를 보호하고자 한국형 포이즌필을 골자로 한 상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2010년 국무회의에서 통과됐지만 국회에서 “소수의 지배주주의 사익추구에 악용될 수 있다”는 야당과 시민단체, 진보 학자들의 강한 반대로 무산됐다.

법무부 관계자는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과 관련된 다양한 견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필요한 부분은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극도로 신중한 태도다. 대놓고 국내 기업 편을 들자니 세계화된 국제 자본시장에서 ‘왕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상법 개정사안이라 관할이 아닌 데다 외국인투자 문제가 개입된 만큼 단정적으로 언급 하기가 곤란하다”며 “제기된 문제점 등을 중심으로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주권익 보호가 일반화된 해외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기업경영 문화가 다르므로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하기에 앞서 일반 주주의 권익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 이후 주주 권익을 보호할 거버넌스위원회를 신설키로 하는 것과 같은 움직임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진단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소수의 지분율로 지배주주 역할을 하는 기업지배구조의 취약성을 개선하고 주주 친화적인 기업문화가 속히 조성돼야 한다”며 “이런 문화가 정착되면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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