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윤종찬감독표 고통의 예술 속으로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윤종찬감독표 고통의 예술 속으로

입력 2009-11-20 12:00
수정 2009-11-2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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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합니다’

최영미의 시 ‘인생’은 ‘…바깥 세상은/ 졸리운 눈 속으로 얼키설키 감겨오는데/ 전선 위에 무심히 내려앉은/ 저걸, / 하늘이라고 그러던가.’라는 읊조림으로 끝난다. ‘나는 행복합니다’ 주인공 만수가 약국을 나오며 바라본 곳에도 ‘여기저기 얽힌 전깃줄과 하늘’이 있다. 사는 데 지친 만수는 편히 잠도 자지 못하는 처지다. 하늘에 대고 세상살이를 한탄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떤 사람에게 하늘은 무심한 벽이다.

‘나는 행복합니다’는 과대망상증 환자 만수와 정신병동의 수간호사 수경의 고통과 슬픔이 아로새겨진 이야기다. 시골길 옆에서 정비가게를 운영하던 만수에겐 가족이 있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도박에 미친 형을 뒤치다꺼리하느라고 만수는 자기 삶을 챙길 겨를이 없다. 어머니의 실종, 형의 자살, 폭력배의 빚 독촉은 마침내 착한 남자의 정신을 빼앗는다. 직장암에 걸린 아버지를 홀로 돌보는 수경도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얼마 전 연인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세상에 남은 유일한 끈인 아버지에게 미치도록 매달린다.

만수와 수경이 막막한 세상과 싸우는 방식은 다르다. 비록 허구 속이지만 백만장자의 삶을 빌린 그는 현실과 등질 수 있어 행복하다. 빈 종이를 이용해 수표를 발행하고, 주변인들의 고민을 해결할 때면 그의 얼굴에 미소가 넘친다. 그러나 깨어 있지 않은 자의 행복이 과연 진실한 것일까. 반대로 수경은 무턱대고 붙잡고 늘어지기만을 계속한다. 주변 사람에게 억지를 부리고, 돈이 모자라면 여기저기서 빌리면서 회복되지 못할 아버지의 병세를 애써 잊으려 한다. 그녀는 삶에 탈출구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산다는 게 온통 고통으로 가득하기만 한 걸까.

윤종찬의 영화는 고통의 예술이다. ‘소름’은 사회의 밑바닥 삶을 유지하는 존재들의 본질을 고통에서 찾았고, ‘청연’은 식민지 시대를 사는 조선인이 필연적으로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직시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그 고통이 현실과 부딪힌 결과는 줄곧 ‘죽음’이다. 모두가 윤택한 삶과 미래의 행복을 추종하는 시대에 그는 다독거려야 할 고통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런 이유로 그의 영화를 본 다음엔 숨을 고르게 될 정도로 몸과 정신이 탈진에 이른다. ‘나는 행복합니다’도 여지없이 고통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이번의 결말은 전작 두 편과 사뭇 다르다.

원작소설 ‘조만득씨’를 쓴 이청준은 “미쳐 버리거나 했으면 싶은 심사를 좋이 참으며 산 사람들이 많았던 지난 한 시절, 그 암울스런 현실 속에 ‘우리’의 모습을 대신 비춰줄 한 사내의 이야기를 썼다.”고 밝혔다. 어쩌면 소설의 결말 -만득이 퇴원 후 어미와 동생을 목 졸라 죽인다-이 윤종찬의 영화에 더 어울릴 테지만, 영화의 주인공은 현실로 돌아오되 삶을 택한다. 고민은 거기서 시작된다. 그가 돌아온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사람은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만수가 돌아온 집엔 외등 하나만 켜 있을 뿐 주변은 온통 컴컴하다. 오토바이가 밤길을 달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오토바이의 머리등 앞으로 난 길을 보며 우리는 기도한다. 그의 앞길이 이제는 평안하기를. 그리고 희망한다. 우리가 삶의 방식을 조금만 바꿀 수 있다면 그 빛이 더 환해지고, 그 빛이 비추는 공간이 더 커질 것임을. 26일 개봉.



<영화평론가>
2009-11-2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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