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박록삼특파원│‘창장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 역사 발전의 필연적 합법칙성을 얘기할 때, 혹은 후대에 대한 경외와 자기 성찰을 요구할 때 중국에서 흔히 쓰는 속담이다. 하지만 상하이(上海)를 꼼꼼히 보고 나면 이 속담은 조금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창장의 뒷물결은 앞물결에 섞여서 함께 흐른다.’ 정도로 말이다.창장(長江)의 지류가 흐르는 중국 상하이의 첫 인상은 ‘최첨단 과학문명의 총아’와 함께 시작된다.
이미지 확대
시속 431㎞로 달리고 있는 자기부상열차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시속 431㎞로 달리고 있는 자기부상열차
푸둥국제공항에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는 시속 431㎞의 자기부상열차를 타면 지하철 2호선 룽양루(龍陽路)역까지 30여㎞를 8분 만에 주파한다. 그럼에도 화려한 마천루가 뒤덮고 있는 중국의 메트로폴리스 상하이에 오면 몸을 바짝 낮추고 눈길을 낮은 곳에 둬야 한다. 수백년의 역사와 교감하기 위해서, 또 보이는 것 이상을 보기 위해서다. 상하이의 내밀한 속살은 그런 곳에 감춰져 있다. 상하이 곳곳에 감춰진 전통과 과거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박제화되지 않은 역사가 숨쉬는 곳
1년이면 한국 관광객 수십만명이 상하이를 찾는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명(明)나라 시대의 정원 위위안(豫園)을 찾아 ‘부모를 위해 20년 동안 지은 효심의 정원’이라는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또 해질 무렵이면 황푸장(黃浦江)의 강변 광장이라 할 수 있는 와이탄(外灘)과 유럽 또는 홍콩 어딘가를 방불케 하는 신톈디(新天地) 등을 들러 상하이 젊은이들의 놀이 문화를 엿본 뒤 둥팡밍주(東方明珠) 468m 꼭대기에 올라가 상하이의 어마어마한 스카이라인을 둘러본다. 여력이 있는 이들이라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물어물어 찾아가 그 방치된 듯한 모습에 실망하거나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렇게 하루 이틀 상하이에서 묵은 뒤 쑤저우(蘇州), 항저우(抗州), 난징(南京) 등을 찾아 바쁜 발걸음을 재촉한다.
상하이에 와서 필수적으로 들러야 할 곳들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흔하게 널린 간접 정보들에 노출된 탓인지 뭔가 아쉽거나 식상하다. 2001년 이곳을 방문했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표현처럼 이미 ‘천지 개벽’한 데다 내년 엑스포 행사를 준비하느라 더욱 화려해지고 있는 도시다.
번쩍거리는 불빛이나 뉴욕 못지않은 화려함보다 오히려 전통과 과거를 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가 더욱 쏠쏠하다. 특히 그 모습들은 박물관처럼 박제화되지 않았기에 더욱 반갑다.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상하이의 낡은 골목길인 눙탕(堂)과 상하이에서 1시간도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는 1700년 고도(古都)인 주자자오(朱家角)에서 물과 벗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접목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의 인사동 혹은 홍대앞’ 타이캉루
눙탕은 중국 남방식 골목길을 일컫는다. 홍콩 영화에서 흔히 봤던 좁고 추레한 모습과 흡사하다.
이미지 확대
상하이 옛 골목 눙탕.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상하이 옛 골목 눙탕.
세 명 정도가 함께 지나치려면 어깨가 스칠 듯하다. 머리 위로는 낡은 옷가지며 헤진 이불, 대충 쥐어짠 행주 등이 걸려 나부낀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중국 당국은 지난해 올림픽 이전부터 이를 단속해 왔다- 웃통을 벗고 있거나 러닝셔츠만 걸친 채 골목길 한편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지나는 사람의 발걸음을 무심하게 좇는다.
상하이의 눙탕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두어 곳밖에 남지 않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며 서양 관광객들과 국내의 일부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고 있다. 가장 흥성한 곳이 바로 타이캉루(泰康路)의 눙탕이다. 중국 서민들이 살아왔던 역사와 생활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 화랑과 골동품·공예품 등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다. 중국적 도시 문화 속에서 각국의 음식 문화, 예술 문화가 모여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심지어 북한의 그림, 포스터만을 전문적으로 모아놓은 카페 ‘코뮤니스트’도 있다.
이미지 확대
상하이 타이캉루의 북한 카페 ‘코뮤니스트’.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상하이 타이캉루의 북한 카페 ‘코뮤니스트’.
한국 사람이라면 반가운 한글을 보고 들어섰다가도 섬뜩한 문구의 나열에 흠칫 놀랄 수도 있다. 카페 주인은 호주 사람이라나. 이런 골목길이 미로처럼 끊임없이 이어진다. 술렁술렁 목적 없이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를 찾으려 한다면 필연적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듯 헤매거나 아예 길을 잃기 십상이다.
얼핏 홍대 앞의 자유분방함도 느낄 수 있고 인사동의 국적불명의 전통도 느껴진다. 하지만 이곳은 청대의 봉건지배부터 서구 열강의 아귀다툼, 국민당, 공산당 등 역사의 도저한 흐름 속에서 권력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보며 자신들만의 생존법을 익혀온 중국의 기층 인민들이 지내온 엄연한 생활의 터전이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 1호선 황피난루(黃陂南路)역에서도 꽤 떨어져 있다. 직접 찾기는 쉽지 않다. 그냥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타이캉루’를 외쳐야 한다. 중국어 성조가 익숙하지 않으면 그냥 한문으로 써주자. 상하이 택시기사는 친절하기로 유명하다.
주자자오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아직 낯설다. 최근 들어 여행상품에 많이 포함되면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수상 도시 저우좡(周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이미지 확대
1700년 된 수상도시 주자자오. 시속 431㎞로 달리고 있는 자기부상열차(왼쪽부터).
닫기이미지 확대 보기
1700년 된 수상도시 주자자오. 시속 431㎞로 달리고 있는 자기부상열차(왼쪽부터).
저우좡이 마치 반질반질 닳았지만 손에 넣기 어려운 큰 돌덩어리 같다면 주자자오는 울퉁불퉁하지만 볼수록 매력 있는 조약돌과 비슷하달 만큼 오밀조밀하다. 최근 국내 한 드라마(‘카인과 아벨’)를 이곳에서 촬영하면서 서서히 입소문을 타고 있다.
차오강허(漕港河)를 큰 줄기로 해서 작은 샛강이 얼기설기 이어져 다뎬(大淀)호수로 흘러간다. 물길 사이에는 36개의 돌다리들이 놓여 명나라, 청나라 상업거리의 풍모, 뱃길의 정취 등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우체국 다칭유쥐(大淸郵局)는 중국 동부에서 유일한 우체역사기념관이다. 우체국 뒤편에는 우편배달 배들이 묶인 채 지금이라도 당장 편지와 소식들을 가득 싣고 떠나려는 듯 물결에 출렁거리고 있다. 또한 1912년에 지어진 커즈위안(課植園)은 중국식 건축물과 서양식 건축물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정원이다. 울울한 나무들 속에서 지친 다리쉼을 하기에 제 격이다. 이밖에도 벼농사전시관, 현대조각예술갤러리, 당삼채미술관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주자자오는 상하이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저우좡이 2시간 남짓 걸리는 데 반해 주자자오는 1시간 거리에 있다. 상하이체육관(上海?育館) 전철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상하이여행센터(上海旅游中心)가 있다. 여기에서 주자자오로 가는 표를 판다. 영어는 안 통하니 지명을 미리 한문으로 준비해 두자. 주자자오 입구에 도착하면 인력거꾼들이 비둘기떼처럼 몰려온다. 이 도시가 매우 넓으니 자기네 인력거를 타고 투어하라는 얘기다. 못 알아들으면 다행이지만 설령 말이 잘 통하더라도 무조건 ‘부야오!(不要)’를 외쳐라. 바가지 요금이다. 주자자오는 걸으며 쉬며 구경하며 돌아보기에 딱 좋은 정도의 크기다.
▲이동 방법 푸둥 공항에서 자기부상열차를 탈 때는 꼭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자. 편도 티켓 50위안을 40위안으로 할인해 준다. 시내에서 이동할 때는 지하철이 좋다. 체험이 될 수도 있지만 상하이의 공포스러운 교통지옥을 피하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요금은 거리에 따라 2~6위안이다.
▲묵을 곳 호텔이 아니라도 싸고 깨끗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은 많다. 바로 대학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다. 영어가 곧잘 통하는 데다 교통이 편리하고 가격이 저렴하다. 또한 중국의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상하이사범대학(6432-2236) 또는 둥제(東街)대학(6598-2500), 화둥(華東)사범대학 등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다. 100위안 안팎으로 묵을 수 있다.
2009-07-02 18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