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판타지 담은 독립영화 ‘낮술’
발단은 밤술이다. 혁진의 실연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위로주를 사준다기에 응한 것이 화근이었다. 술김에 친구들은 “내일 당장 정선으로 떠나자.”고 제안하지만, 다음날 정선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사람은 혁진뿐이다. 할 수 없이 ‘홀로 여행’을 시작하는 혁진. 친구가 추천해 준 펜션을 찾아갔다가 “나도 혼자”라는 옆방 여자를 만난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녀 곁에는 남자친구인 듯한 청년이 함께 있다. 이틀 뒤, 강릉 경포대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세 사람. 낮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간 노래방에서 청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혁진과 여자는 처음으로 키스를 나눈다.
신인 감독의 첫 장편영화지만, ‘낮술’의 위력은 여느 상업영화 부럽지 않다.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JJ Star상과 관객평론상, 2008년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특별언급 및 넷팩상 수상을 시작으로 토론토영화제, 스톡홀름영화제, 로테르담영화제, 홍콩영화제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서 쉼없이 초청받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3월에는 한국 독립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미국에서 개봉된다.
일종의 로드무비인 ‘낮술’는 시종일관 남성의 로망과 판타지를 충실하게 따라간다. 실연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떠난 곳에서 주인공 혁진(송삼동)은 5박 6일 동안 술·여자·여행에 관한 잊지 못할 일들을 경험한다. 우유부단하고 소심하며, 술잔과 ‘예쁜’ 여자를 거부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황당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감정을 자아낸다. 청순한 외모로 유혹해 놓고는 말없이 사라지는 옆방 여자(김강희), 조신하게 다가오지만 알고 보니 입이 거친 란희(이란희) 등 캐릭터 분명한 주변인물의 등장은 끊임없이 극에 새로운 긴장감과 유쾌함을 불어넣는다.
제목 ‘낮술’의 의미는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관객이 보는 시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것은 예기치 않은 조우, 취하지 않는 달콤함, 백일몽 같은 찰나일 수 있다. 혹은 눈 뜨고 코 베인 배신, 버릇이 되면 곤란한 치기를 뜻할 수도 있다. 이같은 상상의 무제한성이야말로 ‘낮술’이 지닌 매력 중의 매력이다.
제작후일담도 영화만큼이나 재미있다. 지난 21일 기자시사회 뒤 열린 간담회에서 ‘낮술’ 출연진들은 “배우들이 원하면 노 감독은 언제든지 술을 마시도록 했다.”면서 “심지어 술 마시고 연기한 장면이 더 많을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리얼한 음주연기가 단순히 ‘연기’만은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촬영 뒤 단합을 위한 술자리도 잦았다고 하니, 모르긴 해도 ‘제작비 대비 술값’ 비율이 가장 높은 영화일 것이란 말도 나온다.
‘낮술’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남녀에 따라 이렇게 갈릴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술이 당긴다.” “남자들은 다 저런 거야?” 장담할 수 있는 건 ‘낮술’의 취기를 숨기기 어려울 것이란 점, 시간이 지나 떠올려도 두고두고 ‘큭큭’거리게 될 것이란 점이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2009-01-2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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