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2002년 12월 30일 한 해의 끝자락에 눈까지 펑펑 오는 날 우리 밴드 멤버 네 명은 군악대로 동반 입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입소한 훈련병 중에 내가 제일 고령자라는 말을 어떤 간부에게 듣게 되었다. 고령자라니.
훈련과 제설 작업을 반복하는 사이 우리 넷은 어느덧 군인이 되었고 수도방위사령부 군악대에 배치되었다.
사실 그 힘들고 고된 이등병 시절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왠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께, 심지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조금 미안하기도 하니 생략하고 지금 기억나는 나의 군 생활 중 가장 즐거운, 물론 당시는 아니었지만, 사건들 몇 가지를 얘기하고자 한다.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인디밴드 ‘크라잉 넛’은 술을 좋아한다. 술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네 명에게는 다른 게 아니라 2년 동안 술을 못 마시고 버티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 휴가를 나와서는 물론 마음대로 쭉쭉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 하지만 아무리 군대라지만 음악이 있는 곳에는 으레 술이 있기 마련인거다.물론 제식행사 때나 평상시에는 결코 그럴 수 없겠지만, 우리가 고참이 되어서 소조밴드로 간부들의 행사에 나갔을 때에는 얘기가 달랐다.
그렇다. 풍악을 울리면 술이 돌고 돌다가 결국 밴드에게도 떨어졌다. 한 잔 정도는 괜찮다며 한 사람씩 따라주는 술을 마시다 보면, N사람 곱하기 1잔은 N잔. 그런 날은 휴가 나온 것보다 열 배는 즐겁다. 몰래 먹는 술이 더 감칠맛이 나는 걸 그때야 알았다.그러나 엄연히 군대에는 규칙이 있는 법이다. 아무리 정신을 차려도 술에는 장사가 없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군에서의 마지막 크리스마스 행사가 있던 날, 나는 해롱해롱하는 상태로 화장실에 가다가 변기인 줄 알고 가까이에 있는 정수기에 그만 일을 봐버렸다. 그때 공교롭게도 일직사관이 순찰을 돌았고, 일직하사는 하필 밴드 멤버인 경록이였다. 경록이는 나 때문에 엄청 혼났고 나는 징계를 받아 2박 3일 포상휴가를 박탈당했다. 당시는 이런저런 괴로움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 2년을, 힘들게 느껴질 만한 시간들을, 이런 추억 속에서 쏠쏠한 재미를 찾으며 잘 버텨왔던 것이다.여자들은 남자 셋만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한다고 싫어한다. 또 싫어하는 이야기로는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도 있다. 그렇지만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면 어쩔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럼, 2년 동안 남자들끼리 도대체 어떤 색다른 일들을 할 수 있겠는가.
2년 동안 비슷한 경험을 하고 비슷한 스토리를 겪으면 그 사람들끼리는 2년 동안 이야기를 해도 모자랄,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군대 다녀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새삼 해보게 된다. 뭐 가기 싫어도 갈 수밖에 없었지만.
크라잉 넛_ 젊은이들의 노래방 필수곡인 ‘말 달리자’를 부른 인디밴드입니다. 멤버 네 명이 동반 입대를 하는 등 아주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밴드에서 기타를 맡고 있는 이상면 님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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