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석의 스크린 엿보기] 뱅크 잡

[김봉석의 스크린 엿보기] 뱅크 잡

입력 2008-10-25 00:00
수정 2008-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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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공불락 금고를 털어라

은행이나 대형 금고에서 돈을 터는 과정을 그린 강탈 영화는 꽤 매력적인 장르다. 난공불락의 금고를 터는 과정 자체도 재미있고, 다양한 범죄자들이 모여 서로 부딪치거나 협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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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뱅크잡’
영화 ‘뱅크잡’
잔인한 폭력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한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치 한바탕 쇼를 하는 것처럼 금고를 터는 ‘오션스 일레븐‘이나 같은 편끼리 속고 속이는 음모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이탈리안 잡‘ 등이 강탈영화의 대표작이다. ‘뱅크 잡‘도 충실하게 강탈영화의 정석을 따른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오는 말처럼 ‘뱅크 잡‘은 실화에 기반한 영화다. 금고털이는 결코 쇼가 아니고, 금고를 터는 이들 역시 유쾌한 건달들만은 아니다.

1971년, 카 딜러인 테리에게 옛 친구인 아름다운 모델 마틴이 찾아온다. 내부 사정을 알고 있다며 로이스 은행을 털자는 것이다. 사채 때문에 고민하던 테리는 친구들을 모아 터널을 뚫을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면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영국 왕실의 치부가 담긴 사진이 금고에 있었고, 공식적으로 손에 넣을 수 없었던 탓에 정보부는 은밀하게 테리에게 금고를 털게 하려는 것이다. 물론 마틴의 손을 통해서 사진을 손에 넣게 되면, 테리와 친구들의 운명은 풍전등화에 놓일 것이다. ‘뱅크 잡‘은 단순히 금고를 털고 도망치는 과정이 아니라, 그들이 왜 금고를 털게 되었고 이면에 도사린 음모가 어떻게 정리되는가가 더욱 흥미로운 작품이다.

‘뱅크 잡‘은 금고털이범들의 세계를 멋지게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런던의 하층 노동자들이고, 일확천금의 꿈이 있을 뿐 크게 사악하지도 영웅적이지도 않은 보통 사람들이다. 그들이 분에 넘치게도 은행을 털게 된 것은, 영국 지도층의 음모 때문이었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고, 나름의 해피엔딩을 이루려 했을 뿐이다.

‘뱅크 잡‘은 보통 강탈영화와는 달리 금고털이의 희열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진을 둘러싼 영국 고위층의 부패와 추문, 민중의 영웅을 자처하는 범죄자의 말로, 부패 경찰의 추악한 얼굴 등 당대 영국의 그림자들을 충실하게 그려내는 데 더욱 열심이다.

의도하지 않게 음모에 말려들었지만, 결코 선을 넘지 않고 자신들의 생존을 찾아가는 테리와 친구들의 모습은 충분히 현실적이다.

과장하지 않고, 인물들의 행동을 완만하게 따라가는 ‘뱅크 잡‘은 오락영화라기보다 잘 정돈된 실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준다. ‘뱅크 잡‘은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춰진 깔끔한 강탈영화다.

영화평론가
2008-10-25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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