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직의 신연극 재공연
한국 신연극의 효시인 이인직의 ‘은세계’가 한세기 만에 무대에서 재조명된다. 서울 정동극장과 극단 미추는 10월3일부터 19일까지 배삼식 각색, 손진책 연출로 재창작된 ‘은세계’를 선보인다. 최초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 복원을 위해 건립된 정동극장이 원각사 설립 100년과 한국 연극 100년을 기념하고자 마련한 무대다.
극단 미추의 ‘은세계’는 이인직의 원작이나 초연 당시 공연과는 상당히 다르다.1908년 원각사에서 ‘은세계’ 공연을 준비하는 광대들의 이야기가 한 축을 이루고, 작가가 재구성한 이인직의 삶과 행적이 또 다른 축을 이룬다. 원작의 창극 공연은 극중극 형태로 삽입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작품이 전달하는 주제의식이다. 이인직의 ‘은세계’는 전반부는 반봉건 개혁사상을 담고 있지만 후반부는 노골적인 친일 성향을 노출하고 있다. 이완용의 비서로 활동했던 친일파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낸 것이다.
극중에서 창극 ‘은세계’를 연습하는 소리광대꾼 김창환, 강용환, 송만갑, 이동백, 허금파 등은 변화의 시대에 경쟁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 자신이 원하는 것과 대중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치열하게 갈등하면서도 신명을 다해 무대에 오른다.‘은세계’가 100년 세월의 강을 건너 지금도 유효한 이유는 “연극에 대한 진지한 시선과 태도” 때문일 것이라고 배 작가는 말했다.
이번 공연에는 초연 당시 창극 형태의 특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국립창극단 주역 왕기석과 한승석 등이 당대 명창인 김창환, 이동백의 역할을 맡는다. 이인직 역의 정태화, 전처 역의 김성녀 등 극단 미추의 간판 배우들도 대거 등장한다.
아쟁과 대금의 즉흥 연주인 수성가락 등 국악 라이브 음악도 주목할 만하다. 무대는 원각사의 공연장 형태인 원뿔형 극장 모양을 주축으로 공연장 밖과 안의 이미지를 살릴 계획이다.
손진책 연출은 “연극계 내부에서도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은 이인직의 ‘은세계’를 어떻게 그릴 지 고민이 많았다.”면서 “이인직의 친일 행동을 정당화하고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치부를 직시함으로써 그에게 부여된 과도한 명예를 벗겨주고, 그 명예를 당시의 광대들에게 돌려주는 데 의미를 뒀다.”고 말했다.(02)751-15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08-09-2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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