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밖을 내다보는 일을 좋아합니다. 나무도 새도, 자동차도 사람도 다 신기합니다. 맑은 눈에 담긴 세상은 온통 그림책입니다. 아이는 더 가까이 다가서려고 높다란 아파트 베란다 창문 틈새로 고개를 내밉니다. 보다 못한 아빠가 번쩍 안아 멀찌감치 떼어놓지만, 아이는 기어코 제가 있던 자리로 돌아갑니다. 같은 일을 몇 번 되풀이하다가 아이는 끝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곁에서 보살펴주면 될 것을, 아빠는 왠지 불안하고 번거롭습니다. 야단치고 겁을 주어서 아예 창문 근처에 얼씬 못 하도록 버릇을 들입니다. 아이는 단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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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비슷한 일이 또 벌어집니다. 소년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뜻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어른들은 그의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웁니다. 남과 같아서도, 달라서도 안 됩니다. 경쟁자를 물리쳐야 하지만, 허락된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멀리 내다보고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창의력을 요구합니다.
‘훈육’과 ‘자율’이라는, 사람을 경작하는 두 가지의 논리에는 각기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개개인이 취사선택할 사안이므로 논외로 합니다. 다만 우리의 관심사는 언젠가 우리의 아이들이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풀어야 할 문제에 직면한다는 것이고, 현실이 던지는 이 질문에는 참고서도, 과외교사도, 어쩌면 정답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앵무새처럼 외웠던 죽어버린 지식은 이때 아무 쓸모도 없습니다. 교육이란 궁극적으로 미지의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능력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앞선 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늘 기지의 잣대만을 들이댑니다. 이것은 참 오래된 모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