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말 재일동포 애환… 객석도 뭉클

1960년대말 재일동포 애환… 객석도 뭉클

정서린 기자
입력 2008-05-24 00:00
수정 2008-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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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합작연극 ‘ 야키니쿠 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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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는 사내들은 철판에 곱창을 구워 먹는다. 아낙들은 쇳내가 나는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한다. 낡은 함석 지붕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 굉음이 질곡처럼 드리우는 곳. 한국말과 일본말이 아무렇게나 차려놓은 밥상처럼 섞여드는 곳. 이곳은 1960년대 말 일본 간사이 지방에 엎드려 살던 재일교포들의 살림처, 용길이네 곱창집이다.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25일까지·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의 풍경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평양전쟁에서 왼팔을 잃고 일본에 자리를 잡은 용길. 전처와 낳은 딸 시즈카·리카, 후처인 영순의 딸 미카, 영순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 도키오와 함께 곱창집을 운영한다.

사계절을 보내며 세 딸은 제 짝을 찾아 일본, 한국, 북한으로 각각 떠난다. 날마다 학교에서 상처투성이가 돼 돌아오는 아들은 여느날처럼 지붕 위에 올라갔다가 그림처럼 떨어진다. 한편 일본 당국은 용길이가 제값 주고 산 옹색한 땅을 ‘국유지 점거’라며 빼앗으려 한다.

한·일 배우들이 함께 극을 이끌어가고 자막도 한국어와 일본어가 번갈아 나오는 ‘야키니쿠 드래곤’은 한국인도 일본인도 못된 채 이국땅에서 살아야 했던 재일동포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린다.

비관적 현실 속에서도 의지로 낙관하는 인물들을 보는 마음은 뭉클하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패악도 부리고 오열도 한다.

객석에서 참았던 울음이 터지는 지점은 침묵을 지키던 아버지의 속내가 비로소 드러날 때. 땅도 자식도 팔도 모두 잃은 용길은 절규한다.“일하고 일하고 일만 하다가….” 한번 터진 울음을 그칠 줄 모르는 용길역의 신철진, 커튼콜 때도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미처 지우지 못한 미순역의 고수희는 극에 또렷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처음 왔던 것처럼 빈 수레를 끌고 떠나는 가족 위로 축복처럼 벚꽃이 내린다.

이 연극은 영화 ‘피와 뼈’의 작가로 유명한 재일교포 출신 극작가 정의신(51)과 한국의 연출가 양정웅(40)이 한·일합작으로 만든 작품. 실제로 오사카 인근 국유지에서 고물상집 아들로 살았던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을 극에 녹여낸 정의신의 체취가 뚜렷하다. 반면 상대적으로 스타일리스트적 면모가 강한 양정웅 특유의 연출색이 그리 드러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02)580-1300.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8-05-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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