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면 톡하고 부러질 것 같은 가녀린 이미지를 지닌 배우 김민희가 성숙한 여인으로 돌아왔다.10대,20대,40대 세여자의 솔직한 연애담을 그린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17일 개봉)에 출연한 그녀는 시사회 이후 ‘김민희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우로서 여자로서 한단계 성장한 그를 만났다.



“진실된 마음을 전하자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2년 넘게 쉬면서 ‘연기는 전달하는 것이지 보여 주는 게 아니다.’는 연기관을 갖게 됐죠. 다행히 많은 분들이 칭찬해 주셔서 좋아요. 한편으론 다음 작품이 부담도 되지만요.”

그는 이 작품에서 입봉도 못하고 1년째 영화 엔딩만 고민하는 시나리오 작가 아미 역을 맡아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였다. 사귀던 남자친구는 바람나고 완벽한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여자이다.

●연기력 논란 딛고 배우로 ‘재조명’

영화 속 인물과 김민희는 공교롭게도 스물일곱 ‘동갑’이다. 일도 사랑도 불확실하기에 더 뜨거운 청춘들. 때문에 그 둘이 만난 시너지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아미가 준비한 작품마다 번번이 엎어져 ‘이제와서 뭘 다시해.’라며 술주정하는 부분이 있는데, 저 역시 크게 공감했어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실패를 단정짓는 모습에서 예전의 제 모습을 발견한 거죠.”

지난 2000년 모 이동통신 CF에서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를 외쳤던 김민희는 당시 ‘N세대’라는 아이콘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CF스타로서 각인된 이미지는 여러가지 편견을 낳았고, 이후 출연한 작품에서 연기력을 둘러싼 논란에 시달렸다.

“지금 돌아 보면 맞을 매를 맞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당시는 참 힘들었어요. 갑자기 관심도 줄어들고 공백기가 생기자 연기자의 길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더군요. 그땐 연기가 뭔지도 모른 채 의무감에 일했던 것 같아요. 연기란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인데 그런 반응이 있을 법도 하죠.”

●“사랑도 이별도 소중한 경험”

오랜 방황 끝에 대중의 날선 평가를 겸허히 받아 들인 그녀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용기를 갖고 다시 대중 앞에 섰다.2006년 드라마 ‘굿바이 솔로’의 배역을 맡기 위해 무려 다섯번 넘게 노희경 작가를 찾아 갔다는 것은 방송가에서 유명한 일화다.

“인생에서 세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그 기회들을 모두 놓쳐 버린 것은 아닌지 덜컥 겁이 나는 거예요. 연기자로서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죠.”

하지만 연기자로서 방황이 끝나자 한 여자로서의 방황이 찾아왔다. 지난해 이맘때 쯤 톱스타 이정재와의 결별로 또다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물론 가슴앓이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잘 넘겼어요. 사랑이건 이별이건 경험의 일부이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듯 제 인생의 작은 메시지가 됐고 또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죠.”

이제 연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욕심없이 편안히 스며드는 연기자가 되고 싶단다. 새로 활짝 열린 기회의 문 앞에 그는 지금 여유만만하게 서있다.

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