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정의 영화in] 미스트

[강유정의 영화in] 미스트

입력 2008-01-05 00:00
수정 2008-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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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괴물앞에서 나약한 인간

스티븐 킹의 소설을 읽다 보면 사람이라는 것, 그 자체가 괴물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다.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미스트’에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괴물들이 몰려온다. 사람들이 공포에 떤다. 대개 비슷한 상황들이다. 괴물의 모습이 달라진다. 때론 좀비이기도 하고, 때론 살인마이기도 하며 때론 유전자가 변형된 동물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안개다. 안개의 공포는 그것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영화 ‘미스트’의 전반을 감싸는 공포감 역시 여기서 비롯된다. 안개가 우리를 포위했다. 그런데 그 안개에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것이 숨어 있다. 그것은 생명체일까 아닐까, 아니 지구상의 것일까 아니면 외계의 것일까.

그런데, 이 영화 ‘미스트’, 만만치 않다. 그 만만치 않음은 영화의 공포가 실은 외재적인 데 있는 게 아니라는 데에 있다. 사람들은 불온한 안개와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겁을 먹는다. 누군가가 괴생물체를 목격했노라고 말하지만 쉽게 믿어주지 않는다. 대도시에서 온 똑똑한 변호사에게 사람들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바보로 만든다며 외려 자신의 조직을 구성한다. 바보들을 따돌리고 밖에 나가보자고 말이다. 이 틈을 타서 종교에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 광신도 주부가 종말론을 외친다. 이 모든 것이 신의 징벌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그녀는 ‘희생양’을 바쳐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다.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생물체라고 믿기 어려운 희한한 괴물들이 그들을 습격한다. 그런데 더 공포스러운 것은 이 미지의 괴물 앞에 선 ‘인간’이라는, 나약하고 간교한 생물체들이다. 그들은 그 작은 공간 안에서 편을 가르고 획책한다. 의견은 사람의 수만큼 갈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성적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광신도로 돌변해 살인을 저지른다. 먹을 것이 해결된 ‘마트’라는 공간, 하지만 갇혀 있다는 불안이 준비된 식량으로 달래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공포 그 자체 때문에 공포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결국 선택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죽더라도 도망쳐 보는 것, 두 번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마지막은 사이비 종교와 같은 미망에 빠져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 카메라는 죽더라도 도망쳐 보자는 낙관적 행동주의자들을 따라간다. 그렇다면 그들은 탈출에 성공할까? 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 괴물이 나타나는 순간 이미 결말이 준비 되어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당신이 선택하는 것, 바로 그것이 답이 되리라는 것.

따지고 보면, 미국의 스릴러 영화들은 외계 혹은 미지에서 온 가상의 적들을 많이 그려낸다. 좀비, 외계인, 괴생물체 등등. 가상의 적들로부터의 침공이라는 설정 덕분에 SF라는 장르가, 그리고 특수 효과가 발전되어 왔겠지만 때로는 그런 생각도 든다. 어쩌면 미국은 진짜 미국을 침범할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침범당한 역사도, 유린당한 기억도 없는 그들에게 적은 늘 외재적인 것은 아닐까? 스릴러와 미스터리 속에서도 억압당했던 여성과 침략 당한 역사를 재구하는 우리 영화와 달리, 미국의 영화들은 자유롭다. 안개와 함께 안온한 일상에 틈입해 온 괴생물체, 억압이 없는 자들은 미지의 것이 두려운가 보다.

2008-01-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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