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내는 남편이 안쓰럽다. 유독 아침잠이 많은 사람, 머리를 긁적이며 눈을 껌뻑인다. 스르르 고개를 다시 떨군다. 앉은 채 존다.“조금만 더 주무세요.” 이 한마디가 입안을 맴돈다.‘꼭 저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나.’아내가 살짝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깨워야 한다. 앞에 놓인 하루가 길고 또 길다. 아내는 손을 뻗어 남편의 손을 만져 본다. 살짝 코고는 남편, 대견하고 측은하다.“이제 일어나셔야죠.” 아내의 말에 남편이 부스스 눈을 떴다.“내가 또 졸았어요? 미안.” 의외로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슬쩍 웃더니 금세 나설 준비를 시작한다. 할 일이 너무 많다. 대선은 불과 20일 앞이다.29일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하루가 시작됐다. 정 후보의 부인 민혜경씨는 남편을 배웅한다.“오늘도 힘내세요.” 민씨는 “그것 외에는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지친 사람들끼리 꼭 안아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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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서울 응암동 응암시장을 찾아 한 상인과 반갑게 포옹하고 있다.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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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가 서울 응암동 응암시장을 찾아 한 상인과 반갑게 포옹하고 있다.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정 후보의 첫 행선지는 서울 여의도역 사거리였다. 오전 8시30분 바쁘게 오가는 직장인들 사이로 정 후보가 모습을 드러냈다.1초가 아깝고 한 사람이 아쉬운 때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정 후보는 “얼마나 힘드세요. 안아주세요.”를 연신 되풀이했다. 통합신당이 대대적으로 준비한 ‘안아주세요’ 캠페인이다.‘행복’‘자상함’ 같은 ‘가족 대통령’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해 도입했다.
공식선거전 첫날인 지난 27일 정 후보는 서울 명동에서 처음 사람들을 안아주기 시작했다. 멋쩍어했다. 표정에 어색함이 묻어났다. 정 후보측 한 관계자는 “원래 정 후보는 수줍음이 많고 여린 사람”이라고 했다. 후보 선출 후 첫 방문지였던 동대문 평화시장의 한 상인도 “수금 안해 주면 돈 달라는 말도 못하고 계단에 앉아 기다리곤 했다.”고 정 후보를 기억했다.
그런 정 후보지만 이제 생면부지의 사람과 포옹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 능숙하게 끌어안고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그는 “스킨십은 할수록 늘어요 지친 사람들끼리 꼭 안아주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라고 했다.
●트로트 박자는 놓쳐도 율동은 열심히
유세차에서 트로트가 흘러나온다.‘사랑해요 정동영’이다. 트로트 가수 장윤정의 ‘어부바’를 개사했다.‘아싸’ 선거운동원들이 일제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정 후보도 유세차에 올라 몸을 흔든다. 손을 올리고 발로 박자를 맞춘다. 그런데 잘 안 맞는다. 박자와 동작이 서로 엇나간다. 스스로도 ‘박치’라고 고백해 온 그다. 열심히 따라 하려는데 쉽지 않은 표정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 후보측 관계자가 혼잣말을 한다.“이거 율동 특별과외라도 시켜야 되겠구먼.”
한참 흔들어대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후보가 인사말을 시작한다.“여러분, 추운 아침에 웬 노랫소리에, 웬 춤에, 죄송합니다.” 쑥스러운 표정이 슬쩍 얼굴에 지나간다.“그렇지만 밝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자는 뜻으로 받아주세요.”라고 덧붙였다. 이제 으레 시작될 정치인들의 일장연설. 그런데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트레이드마크인 격정적인 웅변, 화려한 제스처가 없어졌다. 정 후보는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듯 유세를 이어갔다.
부드러운 이미지로 다가서기 위해서라고 했다.“웅변투의 공격적인 정치인보다 자상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강조하려는 겁니다.” 정 후보측 한 관계자가 이유를 설명했다. 정 후보도 “제가 연설이라면 좀 할 줄 아는데 텔레비전엔 늘 고약하게 나와서 정 떨어진다고 하시더라.”고 했다. 또 “이제 더이상 연설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웅변 같은 연설보다 인간미로 승부
말버릇도 고쳤다. 정 후보는 자신을 지칭할 때 꼭 “정동영이는…”이라고 부르곤 했다. 오랜 습관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꼭 자신의 이름을 3인칭으로 부르곤 했다. 그 습관도 최근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지 말라더라고…”라며 없앴다. 정 후보측 관계자들은 “겸손해 보이지 않아서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했다.”고 전했다.
정 후보의 부인 민씨는 그게 남편의 본래 모습이라고 했다.“인간적이고 순진한 사람이에요. 정치하면서 많이 상처 받고 고생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하고 싶은 일은 꼭 이루겠다는 집념이 강한 사람이에요. 저는 믿습니다.” 민씨가 살짝 웃음을 짓는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07-11-30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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